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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69세 효정이 부당함을 참지 않고 햇빛으로 걸어나가 참으로 살아가는 결심의 과정을 그린 영화 '69세'(임선애 감독, ㈜기린제작사 제작). 극중 69세의 성폭행 피해자 심효정 역의 예수정(65)이 18일 서울 강남구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극중 그가 연기하는 효정은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옷을 차려 입고 늘 정갈한 자세를 유지하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노인답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고 있는 69세 노인. 어느 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29세의 젊은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치욕적인 일을 당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하지만 경찰과 주변 사람들은 효정을 치매 환자로 매도하고 법원 역시 나이 차이를 근거로 사건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효정은 현실에 굴하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어 가해자를 향한 일갈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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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신문기사를 통해 본 사건인데, 우리나라는 아니고 해외에서 이런 성폭행 사건을 봤다고 하시더라. 진짜 피해자분은 효정과 달리 자살을 했다고 하더라. 여러 곳에 신고를 했는데 영화의 상황처럼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서 안타깝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더라. 감독님께서 이 사건이 머리 속에 떠나지 않아서 글을 썼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안타까운 선택을 했던 실화 속 피해자와 달리 꿋꿋이 자신의 일을 거러나가는 효정의 모습을 통해 노년의 존엄성을 보여주는 '69세'. 예수정은 "모두가 개인적인 삶을 살아도, 모두가 사회적인 인물을 느끼지 않나. 극중 효정의 곁에는 기주봉 선생님이 연기하신 동인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존재가 효정에게는 정말 중요했던 것 같다"라며 "효정 역시 오롯이 혼자 였다면 피해를 당한 후에도 그렇게 용기 있게 입을 열지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동인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친구든 가족이든 다른 존재와의 연대감은 중요한 것 같다. 사람으로서 한발을 내딛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서 "그리고 또한 효정이 강인한 삶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큰 축에는 어렸을 때부터 떨어져 살고 있는 딸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움에 대한 힘은 인생에 있어서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는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과 관련되 효정의 구질구질한 과거가 나오지 않는게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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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정은 노년 여성의 성폭행을 다루는 영화 '69세'는 단지 소재가 전부인 작품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극적인 소재만이 전부인 영화였다면 택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성폭행은 소재일 뿐이고, 이 영화는 사회적 취약성에 있는 인물이 끔찍한 일을 당했을때, 그 힘겨운 삶을 어떻게 걸어가는가에 대해 묵묵히 보여주는 영화다"고 강조했다. 이어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 사회가 취약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90% 이상이 편견이 시선을 감내하는 인물의 대처가 흥미를 끌었던 작품이다"고 덧붙였다.
예수정은 "극중 노년의 힘없는 여성인 효정이 평상시보다 힘든 일을 당했을 때 대처하는 모습을 영화가 잘 다룬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끔찍한 일을 당했을 때 이 여성이 뭔가 거창하게 부르짖는게 아니라, 자기가 직면한 자기의 문제를 묵묵히 맞서고, 자기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어깨에 매고 참 좋았다"라며 "나는 효정이 나의 삶에서 덮쳐왔던 일들을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책임지고 눈 감지 않고 대면한다는 게 참 좋았다. 그래서 이 인물이 마지막에는 결국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건이 시원하게 해결되고 그런건 아니지만, 효정이 어떠한 속박에서 벗어다는 게 바로 선물을 받은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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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정은 노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 '69세'가 가진 의미에 대해 "앞으로 나올 이 같은 영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작점으로서는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노년이라는게 우리가 갈 길인데, 그동안 영화 속 노년의 모습은 일반적이지 않게 그려졌다. 그래서 그동안 작품은 노년의 삶에 대해 젊은 이들에게 두려움을 줬을 것 같다. 마치 노년이 되면 우리가 없어지는 느낌을 주고, 몇몇 인물들을 통해 50대가 넘으면서 성숙은 없어지고 딴 나라에서 이상한 인물이 된다는 인식을 심어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생각하는 어른의 개념은 딱 두 가지다. 첫번째 가능한 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것. 두번째는 내 삶은 내가 책임지며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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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천만영화와 인기 드라마에 출연하며 적은 분량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준 예수정은 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일단 난 작품 운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어 "내 또래의 어떤 여성 배우든 작품 속에서 그냥 기능적인 엄마 역할만 하고 싶겠나. 나는 운이 좋았던 것"이라며 "아주 일상적인 역할이지만, 엄마들도 사유의 모습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감독님들은 예전 감독님과 달리 주인공을 위한 병풍 같은 엄마를 찾는게 아니라, 적은 분량의 인물이라도 그 인물의 사유를 바라봐주는 감독님이 있다. 그건 전적으로 감독님들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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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69세'는 '사바하', '남한산성', '화차' 등 수십 편의 장편 영화에 참여한 스토리보드 작가 출신의 임선애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예수정, 기주봉, 김준경, 김중기, 김태훈 등이 출연한다. 오는 20일 개봉.
이승미 기자 smlee0326@sportshcosun.com 사진 제공=(주)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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