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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예능서 커밍아웃했지만 방송불가 판정, 패혈증으로 죽을 고비" ('4인용식탁')[SC리뷰]

이우주 기자

기사입력 2023-11-28 00:22 | 최종수정 2023-11-28 06:50


홍석천 "예능서 커밍아웃했지만 방송불가 판정, 패혈증으로 죽을 고비" (…

[스포츠조선닷컴 이우주 기자] '4인용식탁'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했던 이유와 죽을 고비까지 넘겼던 때를 떠올렸다.

27일 방송된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식탁'에서는 방송인 홍석천이 절친 안선영, 이문식, 딸 홍주은 양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2008년 입양하며 조카에서 딸이 된 주은 양. 주은 양은 명문 요리대학을 졸업한 수재로 현재 홍석천과 함께 요식업을 준비 중이다. 홍석천은 조카들을 입양한 이유에 대해 "누나가 이혼을 했다. 누나가 애들 때문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데 부담을 갖는 걸 원하지 않고 조카들이 새로운 가정에 가서 힘들까 봐"라고 밝혔다. 가장 걱정했던 건 조카들의 성이 홍 씨로 바뀌는 것. 주은 양은 "애들이 놀릴까 봐 걱정 안 됐다면 거짓말이다. 모든 상황을 설명해줘야 되는데 사람들이 말을 해도 이해를 못하더라"라고 털어놨다. 홍석천은 "보통 말로 설득하면 안 되겠더라. 삼촌이 어느날 교통사고로 죽을 수 있다. 근데 입양을 안 하면 상속이 안 될 거라고, 그래서 고민하라고 했다 고민하더니 삼촌 하고 싶은 대로 하라더라"라고 솔직히 밝혔다.

홍석천은 "나는 평생 카네이션을 받을 거란 기대를 안 했다. 삼촌 고맙다며 카네이션을 주는데 얘네 내보내고 혼자 울었다"며 "근데 좀 미안하다. 운동회 때나 졸업식 때 난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나의 등장으로 친구들에게 혹시라도 왕따라든가, 괴롭힘, 놀림을 당할까 봐 일부러 늦잠 잤다.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한 적은 없다. 든든한 버팀목 같은 좋은 삼촌이 되고 싶었던 거다. 너무나 많은 게 미안하지만 너무나 사랑한다"고 딸, 아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홍석천 "예능서 커밍아웃했지만 방송불가 판정, 패혈증으로 죽을 고비" (…
삭발 후 광고를 섭렵할 정도로 잘나갔던 홍석천은 2000년, 당시로서는 엄청난 파격이었던 커밍아웃 후 모든 방송이 끊겼다. 홍석천은 "3년 반을 쉬었다. 다 출연정지였다"며 "내가 너무 지독한 사랑을 20대 때 한 번 해봤다. 내가 커밍아웃을 안 한 거 때문에 헤어진 거다. 나는 어떤 게 중요한 사람일까 고민하는데 나는 언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싶었다. 행복하게 살려면 커밍아웃을 해야 다가올 사랑에 당당해지겠다 생각했다"고 커밍아웃을 한 이유를 밝혔다.

홍석천은 "결심을 하고 출연한 예능에서 '여자보다 남자를 더 좋아하냐'고 가볍게 물어보더라. 이때다 싶어서 '맞습니다. 저는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난리가 나서 촬영도 다 접었다. 나는 방송에 내도 된다 해쓴데 결국 제작진은 방송 불가 판정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공개적인 커밍아웃은 힘들겠다 싶었다"며 "2~3주 후에 어떤 기자가 연락이 왔다. 그 기자랑 인터뷰해서 커밍아웃 기사를 낸 것"이라 밝혔다. 기사가 나기 전 부모님께 미리 말씀을 드렸다는 홍석천. 홍석천은 "부모님한테 미리 전화를 해서 제가 게이고 커밍아웃 기사가 나갈 거라고 했다. 근데 엄마가 게이는 뭐고 커밍아웃은 뭐냐더라. 남자를 좋아한다 했더니 그건 우정이라더라. 아빠는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서울로 변호사 데리고 왔다. 절대 안 된다고 기사를 막으려고 했다"며 "심지어 우린 너무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다. 가족 모임에 몇 년을 못 갔다"고 가족에게도 인정받기까지 오래 걸렸다고 털어놨다. 홍석천은 "부모님은 지금까지도 힘들어하신다. 100% 저를 이해하진 못하신다"며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잘 되길 기도해주고 내가 하는 일들을 응원해주는 거다. 아들이 괴로워하는 걸 봤기 때문에 지금은 많이 얘기 안 하려 하신다"고 밝혔다.


홍석천 "예능서 커밍아웃했지만 방송불가 판정, 패혈증으로 죽을 고비" (…
방송이 끊긴 후 생계를 위해 시작한 게 요식업이었다. 홍석천은 "아무도 날 안 불러서 먹고 살기 위해 이태원에서 가게를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이 너무 그립더라. 내가 잘나갈 때는 모든 사람한테 사랑 받았는데 친구들도 잘 못 만났다. 가게를 내면 사람들이 오겠다 했는데 손님들이 나를 보면 발걸음을 돌렸다"며 "월급도 줘야 하고 월세도 내야 하는데. 그때 날 찾아줬던 데가 나이트클럽이었다. 거기서 새벽에 퇴근하고 오면 돈이 안 밀렸다. 그렇게 몇 년을 버텼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자리 잡은 홍석천은 이태원을 부흥시킨 장본인이 됐다. 하지만 무리해서 일하다 죽을 고비를 넘겼을 정도로 크게 아팠다고. 홍석천은 "사람들은 내가 이태원 가게를 정리한 게 코로나19 때문인 줄 아는데 내가 그 1년 전에 패혈증에 걸렸다. 염증이 있었는데 치료를 안 받았다가 터지기 일보 직전에 실려갔다. 하루만 일찍 터져도 죽었을 거라더라"라며 "몸이 건강해야 뭘 할 수 있겠다 싶어서 1년 동안 가게를 정리했다. 그래도 아쉬우니까 두 개만 하자 했는데 코로나19가 터진 거다. 근데 그 코로나19가 진짜 안 끝난다. 매달 적자를 메꾸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정리했다"고 밝혔다.

wjle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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