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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관객도 겨냥…정구호 연출 "자막으로 외국관객 이해 높여"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오늘 심학규 딸 심청이가 인당수에 든 터이니 착실히 모셔드려라!"
분홍빛 의상을 차려입은 용궁 시녀 10명이 인당수에 빠진 심청을 맞이하기 위해 도열한 가운데, 가장 뒤편에서 연꽃 모양 부채를 든 용궁 여왕이 양팔을 벌린 채 등장했다.
용궁을 둘러보던 심청이 여왕을 발견하고 바닥에 몸을 바짝 엎드리자, 여왕은 인자한 미소로 심청의 몸을 일으키더니 원을 그리듯 그의 주변을 돌며 환영의 춤을 선보였다.
8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미리 만나본 전통연희극 '단심'(單沈)에서 자애로운 용궁 여왕으로 무용을 선보이는 이는 다름 아닌 배우 채시라다. 그는 이날 개막하는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단심'의 일원으로서 정식 무용수로 데뷔한다.
채시라는 장면 시연에 이은 간담회에서 "제 생애 꿈에 그리던 '무용수'라는 수식어가 이름 앞에 붙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며 "배우가 되기 전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지금이 꿈만 같다"고 말했다.
'단심'은 정동극장이 극장 개관 3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작품이다. 고전 설화 심청을 소재로 주인공 심청의 내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작품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 환생해 아버지와 재회한다는 기존 이야기를 따른다. 다만 심청 설화가 희생을 통한 효의 실천을 다룬다면, '단심'은 심청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내면의 갈등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정구호 연출은 "과거 효 사상이 무조건적인 것으로 여겨졌다고 해도 심청이 자기를 희생하는 일에 100% 만족했을지 생각해봤다"며 "겉으로 보이는 심청의 모습과 내면을 분리하는 것에서 시작해 심청의 시점에 집중했다"고 기획 의도를 소개했다.
40년간 배우로 활동한 채시라는 이 작품에서 인당수 용궁을 관장하는 여왕으로 특별출연했다. 지난해 서울무용제 홍보대사를 맡아 짧은 춤을 선보였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10분 넘는 시간 동안 춤과 연기를 선보인다.
채시라는 "(서울무용제 당시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뤄 15분 가까이 무대에서 퇴장하지 않고 춤과 연기를 선보일 수 있게 됐다"며 "훈련이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많은 시간을 들여 무대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채시라는 이날 시연에서 다른 무용수들과 합을 맞춰 팔을 하늘로 뻗고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동작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때때로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용궁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했다.
작품 창작진도 고난도 동작을 소화하기 위해 연습을 반복한 채시라의 열정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혜진 안무가는 "채시라 씨는 긍정적인 마음의 소유자라 늘 배우려 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는 근성을 보고 '대배우는 다르구나' 생각하며 작업했다. 연기보다 춤을 더 보여주길 원하는 마음가짐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창작진은 채시라가 등장하는 용궁 장면에서는 신비로운 판타지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심청이 인당수에 뛰어들기로 결정하는 과정이나 궁궐에서 아버지와 재회하는 장면에선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정 안무가는 "3막 궁중 연희 장면에선 1920년대 복식을 바탕에 둔 독특한 의상이 등장한다"며 "무용으로 줄거리를 설명하는 연희극이기 때문에 춤과 의상 등으로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정동극장은 한국적 요소를 앞세운 '단심'을 외국인 관객에게도 적극적으로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와 연계해 '단심' 특별공연을 개최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앞서 서울시무용단 '일무'를 제작해 미국 뉴욕에 진출한 경험이 있는 정구호 연출과 정혜진 안무가는 외국인 관객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정 연출은 "공연 책자에 심청의 기본적인 줄거리를 소개하고, (무대 위로 흐르는) 영어 자막에도 설명을 집어넣어 외국인 관객의 이해도를 높이려 했다"며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공연을 이어가면서 완성도를 높여가려 한다"고 말했다.
'단심'은 다음 달 28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다.
cjs@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