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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정빛 기자] 하늘에서 지켜보는 오요안나가 과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근로자는 아니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있었다." 고용노동부가 고(故)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 사건에 내린 결론은 방송계 프리랜서 인력 구조에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MBC의 대응은 고인의 죽음을 계기로 한 '구조적 반성'이라기보다, '책임 선긋기'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MBC가 보인 대응의 흐름은, 진상에 접근하려는 시도보다 자신들의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에 가까웠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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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이 지난 후에야 고인의 사망 소식이 알려졌고, 고인의 휴대전화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고충을 적은 유서가 대량 발견됐다는 소식이 지난 1월 전해지면서, 사건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자 MBC는 지난 1월 28일 "고인이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자신의 고충을 담당 부서(경영지원국 인사팀 인사 상담실, 감사국 클린센터)나 함께 일했던 관리 책임자들에 알린 적이 전혀 없었다"며 "유족들이 요청한다면 진상조사에 착수할 준비가 돼 있다"는 첫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유족 측은 "사망 사실을 알리는 부고조차 없었다"며 반박하며, 직장 내 괴롭힘이 고인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하고, 동료 직원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실제 사내 기상캐스터 단체 채팅방 일부 내용이 공개되면서, 구체적인 괴롬힘 정황이 드러났다는 여론도 확산됐다.
그럼에도 MBC는 자사 뉴스에서도 관련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고,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 중심에 있는 동료 방송인들을 계속해서 방송에 내보냈다. 이들의 날씨 예보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그대로 게시하면서도, 댓글창을 차단해 시청자들의 항의를 막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MBC가 진상조사위원회를 공식 출범시킨 시점도 고인이 사망한 지 4개월이 지난 뒤였다. 하지만 그로부터도 약 3개월 동안 구체적인 결과나 입장 발표는 없었다.
이러한 MBC의 자체적인 조사가 지연되는 동안, 유족의 고통은 더 깊어졌다. 고인의 어머니는 직접 국회에 나와 눈물로 진상 규명을 호소했고, 고인의 친오빠는 "동생은 끔찍한 괴로움 끝에 삶을 포기하는 선택을 내렸는데, 누군가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날씨를 전하며 안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발 빨랐던 것은 오히려 고용노동부였다. MBC 내부 진상조사와 비슷한 시기에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했던 고용부는 지난 17일 고인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는 관례를 깨는 이례적인 결론이었다.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구조적 책임을 회피해온 방송사의 관행에 제동을 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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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타임라인을 정리해 보자면, 고인의 사망은 지난해 9월, 부고는 12월, 유서 보도는 올해 1월, 고용노동부의 특별감독 착수와 MBC의 진상규명위원회 출범은 2월. 그리고 5월 고용노동부의 판단이 나오자, 그제서야 MBC의 최종 입장이 발표됐다. 초기 침묵과 9개월간의 속도 부진. MBC의 늑장 대응 비판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MBC는 당초 "고인이 고충을 말한 적 없다"며 선을 그었고,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방송은 그대로 송출했다. 속도가 더뎠던 진상조사 과정에서도 고인 측의 목소리는 차단된 반면, 가해 의혹 인물의 화면은 매일 방송을 탄 것. 조직은 침묵했고, 피해자의 흔적은 지워졌다.
아울러 MBC는 입장문에서 "관련자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어떤 조치를 취할 예정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아직 내놓지 않았다. '적절한 조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행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결국 MBC가 실질적 책임보다는 형식적 대응에 머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자초한 셈이다.
이제 필요한 건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을 '시스템의 진정한 변화'다. 오요안나의 죽음은 단지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방송사 내부의 위계는 물론,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책임을 유예해온 관행이 만들어낸 '사회적 사건'이다. 이 무게는 결코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
그래서 질문은 남는다. MBC는 변할 수 있는가. 아니, 변할 의지가 있는가. 많은 이가 MBC의 '조직문화 개선' 행보를, 지금 이 순간에도 매섭게 지켜보고 있다.
정빛 기자 rightligh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