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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만난 조갑상은 "처음부터 의도를 가지고 집필한 건 아닌데, 쓰다 보니 지금처럼 시대적 흐름과 관련된 소설들이 됐다"며 "내가 겪은 시대 흐름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개했다.
이번 소설집은 각 단편을 시대 배경의 시간적 순서에 따라 수록했다.
책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표제작은 1945년 해방 직후 우키시마호 사건을 다뤘다. '그해 봄을 돌이키는 방법에 대해'는 제7대 대선이 치러진 1971년을, '1972년의 교육'은 유신헌법이 공포된 1972년을 배경으로 한다.
1980년대 초반 형제복지원에서 자행된 인권 침해를 조명한 '이름 석 자로 불리던 날', 2010년대 남한 여성과 결혼했다가 북한 여성과 재혼하는 미국인 남성이 주인공인 '두 여자를 품은 남자 이야기', 팬데믹 시기 이야기인 '현수의 하루'도 담겼다.
'도항'은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일제 항복 직후인 1945년 8월 22일 조선 노동자들을 싣고 일본 오미나토항을 출항한 화물선 우키시마호는 목적지인 부산을 향하지 않고 돌연 방향을 바꿔 일본 중부 마이즈루항으로 가다가 침몰했다. 이 일로 조선인 수천 명이 사망했다.
작가는 가족들과 함께 우키시마호에 올라탄 조선인 노동자 김상구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상구는 일터와 집을 두고 떠나라는 일본의 요구로 배에 오른다. 배는 일본 근해를 떠돌고 일본인 선원들은 승선객들을 버려두고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한다.
조갑상은 "해방 후 조선인들을 실은 첫 귀국선인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사건은 시작부터 끝까지 의문으로 남아 있다"며 "일본 정부는 기뢰 접촉에 의해 침몰했다 하고 생존자들은 폭침이라 말하고 있어 엇갈린다. 한일 관계의 여러 굴곡 중 하나가 이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사건은 중요성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편"이라며 "우키시마호의 당초 목적지가 제가 살아온 부산이란 점에서도 의미가 있어 표제작으로 정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름 석 자로 불리던 날'이 다룬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전두환 정권이던 1980년대 초반 이른바 '사회 정화'를 명목으로 부랑인들을 수용한 국가 폭력"이라며 "부산 사람들은 사건을 알고도 외면하고 묵인한 데 대한 죄책감이 있다"고 말했다.
'현수의 하루'는 팬데믹 시기 개인이 느낀 고립감을 투영한 작품이다. 중년 남성 양현수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폐 질환에 걸린 아버지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입원한 아내를 간병하는 일조차 점점 버거워지는데, 뜻밖에 딸의 임신 소식을 듣는다.
조갑상은 "팬데믹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 뒤에는 새로운 탄생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혼자웃기'가 당선되며 등단한 조갑상은 장편 '밤의 눈'으로 2013년 만해문학상과 2014년 서라벌문학상을 받았다. 장편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 '보이지 않는 숲',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 '길에서 형님을 잃다' 등을 펴냈다.
올해 등단 45주년을 맞은 그는 여전히 작품 활동을 쉬지 않고 있다. 이번 소설집은 약 7년에 걸쳐 거의 매년 발표해온 소설을 모은 것이고, 2022년에는 장편 '보이지 않는 숲'을 출간했다.
조갑상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소설집은 여러 단편을 엮어야 하니 새 책이 나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며 "새 장편을 집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272쪽.
jaeh@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