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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집요한 박정민이 아주 지독한 얼굴로 돌아왔다. 연상호 감독과 만나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한 그의 뉴페이스다. 안식(安息)하지 못한 안식년을 선언한 박정민의 기분 좋은 배신이 그저 반갑다.
애를 태웠던 '얼굴'의 이야기는 이렇다. 태어났을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장애를 가진 남자 임영규(박정민·권해효)가 사람들의 멸시와 스스로 만든 모멸감에 벗어나기 위해 갖은 노력으로 전각에 매진했고 그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나면서 모두의 칭송을 받았다. 한국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렸던 시각장애인 임영규에겐 자신의 젊은 시절을 꼭 닮은 아들 임동환(박정민)이 있었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자신이 어렵게 일궈온 공방 청풍전각을 더욱 쉽고 안전하게 물려주기 위해 홍보성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중 예상치 못한 소식을 듣게 된다. 40년 전 사라진 아내, 정영희(신현빈)의 백골 시신이 발견됐다는 것. 갓난쟁이였던 자신과 장애를 가진 아버지를 버리고 사라진 어머니의 소식을 알게 된 아들 임동환도 그저 황당할 뿐. 엎친 데 덮친 격 백골 시신인 어머니의 장례를 뒤늦게 치르던 임동환에게 생면부지한 어머니의 언니들이 찾아왔고 "괴물 같았다"며 어머니의 얼굴을 말하는 이들의 무례함에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동시 어머니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면서 점점 그날의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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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얼굴'은 '연상호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와 제작진 20여명이 극소수로 뭉쳐 단 2주의 프리 프로덕션과 13회 차 촬영, 순제작비 2억원이라는 초저예산 제작비만으로 만들어진 영화라 더욱 의미가 깊다. 200억원을 뛰어넘는 고예산 제작비로 완성된 블록버스터에 치중돼 큰 리스크를 안게 된 위기의 한국 영화에 새로운 가능성, 그리고 돌파구를 연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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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과 임영규의 감정을 나눠 표현한 권해효의 안정적인 서포트도 완벽했다. 선인부터 악인까지 다양한 캐릭터로 입체적인 얼굴을 보여준 '믿고 보는' 권해효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임영규 캐릭터를 든든하게 세우는 근간으로 묵직한 파워를 과시한다. '얼굴'에서 가장 혹독한 도전에 나선 신현빈의 눈물겨운 노력도 빠져서는 안 된다. 신현빈은 '얼굴'에서 단 한 장면도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과감한 시도를 펼친 것. 움츠러든 어깨와 거북목, 거친 손과 어딘가 불편한 목소리까지 얼굴을 제외한 모든 바디 액팅으로 얼굴 없는 정영희를 완성했다. 배우로서 가장 강력한 힘인 얼굴을 잃은 신현빈이 영화 전반 미스터리를 주도하는 인물로 가장 강력한 '얼굴'이 됐다. 신현빈의 인생 최고의 커리어이자 평생 잊지 못할 인생 캐릭터라 자신해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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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얼굴'은 극장 문을 나왔을 때 가볍게 연소되어 버리는 팝콘 무비와 '차원이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2억원으로 200억원 완성도를 보여준 좋은 한국 영화 사례로 남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한편, '얼굴'은 오늘(11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