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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안식년을 선언했지만 결국 안식하지 않은 배우 박정민(38)이 더 깊고 진한 연기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특히 '얼굴'은 '염력'과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1에서 호흡을 맞춘 연상호 감독과 박정민의 세 번째 호흡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한국 영화계 든든한 '파수꾼'으로 자리 잡은 박정민이 '얼굴'을 통해 데뷔 이래 최초 1인 2역에 도전했고 여기에 선배 권해효와 함께 시각장애인 임영규 캐릭터를 2인 1역 소화하며 파격 변신에 나섰다. 전매특허 '결 다른 짜증'부터 섬뜩한 광기까지 빈틈 없는 호연으로 '얼굴'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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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원 초저예산 제작비로 제작된 '얼굴'에 노개런티로 마음을 더한 박정민은 "처음에는 연상호 감독이 배우들에게 '얼마 줄 수 있다'고 했는데 그냥 이 작품에서는 마음 좋게 보이고 싶더라. 크지 않겠지만 내 개런티로 '얼굴' 스태프가 회식비라도 했으면 싶었다. 이 작품을 통해 여러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왕 도와주는 거 화끈하게 도와주고 싶었다. 물론 '얼굴' 개봉 이후 관객수에 따라 러닝 개런티가 계약되어 있다. 연상호 감독이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 지분을 나눠줬다"고 고백했다.
그는 "'얼굴'은 총 13회 차 촬영했다. 1, 2회차를 시장에서 이틀간 찍었는데 그때 엄청나게 많은 양을 찍었다. '동주'(16, 이준익 감독) 때 생각이 많이 났다. 그 때는 정말 밤새 찍었다. 이 작품도 이틀간 주, 야를 가리지 않고 엄청 찍었다. 나도 돌이켜보면 신기할 정도다. 꾸역꾸역 이동을 세 번씩 하면서 찍어 '얼굴'이 완성됐다"며 "확실히 '얼굴'을 촬영하면서 과거 생각이 많이 났다. '얼굴' 현장에 왔던 조명 감독과 촬영 감독, 사운드 기사도 '파수꾼'(11, 윤성현 감독) 때 본 스태프들이다. 그 형들이 헤드 스태프였는데 현장에 보조 스태프를 많이 데려오지 못했다. 마치 '파수꾼' 촬영 때와 비슷했다. 스무명 안팎의 인원이 이동하면서, 헤드 스태프가 막내 일까지 하면서 촬영을 이어갔고 배우들도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로 굉장히 감회가 새롭더라"고 덧붙였다.
이어 "영화 제작 환경을 잘 몰라서 건방지게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지만 배우 입장에서도 그런 생각을 한다. 영화 제작 방식을 조금씩 변화 시키면서 극장 환경에 맞춰 가야 한다는 생각도 해봤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델을 제시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얼굴'은 연상호 감독이 그동안 써온 마음들 덕분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정도 예산은 말이 안 된다. 처음 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연상호 감독 속마음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정말 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걸 자본 논리에 맞춰서 나의 이야기를 맞추는 게 아니라 우리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온전히 하고 싶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연상호 감독이 현장에서 더 신나보이기도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더 열심히 움직인 것 같다. 이 영화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영화 제작 방식을 많이 바꿀 수 없겠지만 나쁜 시도는 아닌 것 같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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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선배 권해효와 2인 1역에 대해서도 "사전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얼굴' 촬영 전 2주 밖에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가 캐릭터를 만들어 카메라 앞에 앉았다기 보다는 권해효 선배와 비슷한 느낌을 내려고 했던 것 같다. 권해효 선배와 덩치와 얼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결국 비슷해지려면 느낌적으로 가야 했다. 뭔가를 구체적으로 해야 했다기 보다는 '인간 박정민이 권해효 선배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생각으로 개인적인 모습을 집어 넣었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아버지 임영규의 젊은 시절을 연기할 때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있고 의상, 미술 등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1인 2역을 자연스럽게 구별해 연기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권해효를 떠올리던 박정민은 후반부 두 사람의 감정이 극으로 치닫는 클라이맥스 장면에 "임영규의 없는 전사를 애드리브로 만들더라. 모든 스태프, 배우가 그 순간 임영규의 전사를 알게 됐는데, 정말 너무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나는 임영규의 과거 신에서는 만화적으로 연기하려고 했는데 그 감정과 권해효 선배의 현재 연기가 너무 잘 붙었다. 점진적으로 캐릭터가 쌓인 모습이었다. 내가 과거 임영규를 만화적으로 과장한 부분이 납득이 됐다. 권해효 선배 덕분에 대본에 없는 과거 회상 장면이 너무 재미있었다. 나도 연기했지만 이런 과거가 있었구나 생각하면서 내가 하는 연기에 정당성을 주더라. 권해효 선배가 연기한 임영규의 과거 회상 독백신은 연상호 감독과도 상의를 안 한 즉흥 연기라고 하더라. 정말 너무 좋은 장면이었다"고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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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무래도 출판사라는 사업이 생기다 보니 배우 박정민이 아닌 인간 박정민으로 발로 뛰어야 하는 부분이 많더라. 작가들을 모셔야 하는 입장이라 그분들의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뒷방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부분에서 대중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꽤 결과가 좋다. 올해 출판사 하면서 열심히 홍보도 하고, 출판사 브랜딩도 하면서 그런 과정을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기분 좋은 결과를 얻었다. 다행히 흑자 전환을 했다. 다만 판매 되는 것에 비해 쓴 돈이 많았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지 못했지만 직원 한 명 더 뽑고 조금 더 책에 투자해서 1~2년은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익은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를 하게 되면 배우 일만 하게 된다. 연기를 제외한 다른 일을 누군가가 해준다. 현장도 그렇고 소속사도 있지 않나? 내가 연기를 잘 할 수 있게 누군가가 많은 서포트를 해준다. 롤이 커질 수록 더 그렇다. 다치지 않게 케어를 해주고 여러 가지 신경도 써준다. 그걸 이제 출판사 대표가 되어서 반대로 하다 보니 작가, 직원들에 마음을 쓰면서 이해를 해가는 것 같다. 이걸 알았다고 너무 착해지거나 성격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서포트 하는 사람들의 일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오는 12월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로 컴백하는 박정민은 "처음 연극 제안이 들어왔을 때 소속사 대표한테 전화가 왔다. 내가 그때 '휴민트'(류승완 감독) 촬영 차 라트비아에 있을 때였는데 처음 대표에게 제안을 받고 고민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대표 옆에 황정민 선배가 있었더라. 통화를 듣던 황정민 선배가 '하지 말라고 해. 이쒸, 내가 할테니까'라며 정확히 말하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2016년 '로미오와 줄리엣' 당시 큰 무대에서 연극을 했는데 그 뒤로 무서워서 못하겠다 생각이 들어 간혹 연극 섭외가 들어와도 모두 거절했다"며 "올해 안식년을 갖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무대는 무섭지만 근사해 보일 것 같고 오랜만에 재미있을 것 같았다. 워낙 '라이프 오브 파이' 영화와 책을 좋아했다. 물론 부담감에 거절을 하는 게 맞겠지 싶기도 했지만 공연 실황 영상을 보고 반했다. 신기할 정도로 좋았고 이 작품을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대감을 털어놨다.
'얼굴'은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임성재, 한지현 등이 출연했고 '부산행' '반도'의 연상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