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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국가대표 인장을 달고 전 세계 한국 영화의 위상을 알리는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진 '거장' 박찬욱(62) 감독이 돌아왔다.
스릴러 범죄 블랙 코미디 영화 '어쩔수가없다'(모호필름 제작) 개봉을 앞둔 박찬욱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어쩔수가없다'의 연출 과정부터 작품과 함께한 배우들을 향한 애정과 진심을 털어놨다.
'어쩔수가없다'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노동자들의 실직이 늘어나는 사회 문제를 박찬욱 감독 특유의 통렬한 화법과 연속되는 딜레마적 상황으로 풀어낸 블랙 코미디 영화다. 전작 '헤어질 결심'이 고품격 멜로를 표방한 시였다면 '어쩔수가없다'는 처절한 생존을 다룬 산문이라고 표현한 박찬욱 감독이다.
이러한 '어쩔수가없다'는 국내 추석 극장 기대작으로 등극한바, 이러한 뜨거운 반응을 입증하듯 지난달 열린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으로 진출해 월드 프리미어로 전 세계 최초 공개됐고 이후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그리고 지난 17일 개막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국가대표급 한국 영화로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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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박찬욱 감독은 3년 만에 신작을 꺼낸 기대감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화에 대한 리뷰와 반응을 잘 안 보고 있다. 제작진을 통해 전해 듣고 있지만 우리 팀도 나에게 다 이야기 해주지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감독인 내 멘탈을 보호해주려고 하는 것 같다. 나도 멘탈이 약하고 관리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최근에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인터뷰를 봤는데 좋은 리뷰만 받아들일 수는 없으니 다른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더라. 그 이야기는 반대로 생각하자면 나쁜 리뷰를 받아들이기 싫으니 좋은 리뷰도 안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도 그런 마음인 것 같다"며 "흥행도 언제나 바랐다. 감독이 모여서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흥행 이야기를 한다. 예술 영화 만들고 독립 영화 만드는 감독이라도 다들 모이면 흥행 이야기만 한다. 다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가 아니라 모두가 다 힘들게 만든 작품인데 한 명의 관객이라도 더 보면 좋겠다는 욕심에서 그런 것 같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공짜 관객이어도 좋으니까 많은 사람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앞서 베니스영화제와 토론토영화제에서 쏟아진 폭발적 반응에 대해서도 곱씹었다. 박찬욱 감독은 "해외 영화제에서는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에 평론가들이 작품에 점수를 매긴다. 보통은 경쟁작이 계속 공개될 때마다 내 영화의 순위가 바뀌는데 집계 내내 계속 1등을 한 경우는 '어쩔수가없다'가 처음이었다. 시사회에서도 상영 중간 박수가 나온 것도 처음이었다"고 해외 분위기를 전했다.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실제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어쩔수가없다'를 향해 쏟아지는 호평으로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의 수상 불발.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은 베니스영화제이지만 오히려 박찬욱 감독은 "내가 만든 어떤 영화보다 관객 반응이 좋아서 이미 큰 상을 받은 기분입이다"고 관객을 향한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이에 박찬욱 감독은 "앞으로는 베니스 안 가고 토론토만 갈까 싶다"며 웃었고 "베니스영화제 수상에 대한 기대 보다도 희망이 있었다. 다른 상은 아니고 남우주연상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 이병헌이 받으면 좋을 것 같았다. 워낙 잘하는 배우였고 실제로 스크린 타임도 길었다. 다른 경쟁 작품을 못 봐서 '어쩔수가없다'와 비교를 못해서 참 아쉽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병헌의 남우주연상을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정말 내가 받는 감독상보다 남우주연상이 더 욕심 났다. 이병헌이 남우주연상을 받으면 아무래도 국내 흥행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준이니까 더 기대했던 게 있다"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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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의 이름 값에 대한 부담감도 상당할 터. 박찬욱 감독은 "내 영화에 대해 '굉장히 훌륭하겠다'라는 대중의 기대에 부담은 별로 없다. 다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이렇지'라는 고정관념이 굉장히 부담스럽다. 그 부분은 언제나 떨쳐버리고 싶은 문제다. '어쩔수가없다'는 처음에 '도끼'나 '모가지'라는 제목을 쓰고 싶었지만 못 쓴 것도 그러한 이유다. 관객이 선입견 없이, 마치 신인감독의 영화처럼 와서 백지 상태에서 작품을 봐주면 어떨까 싶다. 아무래도 나를 향한 고정관념은 잔인하고 노출, 성적인 묘사가 자극적이라는 생각이 있다. 또 뒤틀렸고 특히나 '변태적'이라는 선입견에 대한 부분도 부담이 있다. 대부분 내 작품에 대해 좋게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이 들수록 늙은 변태처럼 보일까봐 걱정된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자 내가 가장 생각하기 싫은 최악의 평가다"고 웃었다.
많은 관객에게 울림을 선사한 전작 '헤어질 결심'에 대한 부담감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박찬욱 감독은 "'어쩔수가없다'와 비교하기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나도 만들면서 '헤어질 결심'이 경쟁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헤어질 결심'을 좋아한 사람이 이 영화도 좋아할 수 있을까 싶었다. 반대로 둘 다 좋아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헤어질 결심'으로 나의 작품 세계에 입문한 관객이라면 '어쩔수가없다'를 보고 조금 놀랄 것이다. 혹자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영화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또 전부터 내 영화를 알아온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당황할 일은 없을 것이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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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실직에 대해서도 박찬욱 감독은 "이병헌, 손예진과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리고 이성민, 박희순, 염혜란도 모이면 같은 주제에 대해 고민을 나눈다. 당장은 안정되어 있다고 안심하지만 예전에는 (실직에 대해) 공포를 많이 느꼈다. 나이가 들면서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나? 우리는 늘 잠재적인 고용불안 상태에 놓여 있다. 내 경우도 특히나 저예산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아니라서 투자가 어렵게 나올 때도 있다. 그것이 연결돼 '어쩔수가없다'가 나온 것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예산에 대한 압박은 거장도 피할 수 없었던 것. 박찬욱 감독은 "저예산 제작비가 들어가는 작업이 필요한 기획이 따로 있을 것 같다. 최근 연상호 감독이 '얼굴'을 2억원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만약 '부산행'이라면 그렇게 찍겠다고 못 하지 않나? 나도 '얼굴'과 같은 스토리나 기획이 생긴다면 얼마든지 만들어 보고 싶다. 또 그런 작업을 위해서는 스태프, 배우들에게 사정을 해야 한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닌데 연상호 감독이 대단하다"고 박수를 보냈다.
'어쩔수가없다'는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등이 출연했고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24일 개봉.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