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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정빛 기자] '국민 MC 유재석'을 보며 꿈을 키운 청년은 이제 '쇼케이스계 유재석'이 됐다. 유재'석'에서 이름 한 글자만 바꾸면 되는, MC 유재'필'이다. 아이돌이 가장 빛날 수 있도록 무대 조도를 맞춰온 시간들, 이제 그의 이름이 조명 받기 시작한다.
그러고선 첫 무대였던 개그맨 시절부터 수많은 쇼케이스 현장, 그리고 앞으로 그리고 싶은 꿈까지, 솔직하고도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유재석 선배님이 꿈이었어요. 웃기면서 돈을 벌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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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한가운데서 한 발 물러나, 스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리. 그러나 유재필은 그 선택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은 지금을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방송인, 예능인, MC… 다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세계예요. 저는 꼭 '누군가를 웃기겠다'는 마음보단,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 스펙트럼을 좁히고 싶지 않아요. 음악도 내고, 연기도 하고, 또 MC도 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한밤'은 방송의 기술보다 태도를 가르쳐준 학교였다. 그곳에서 유재필은 '듣는 법'을 배웠다.
"감독님, 작가님이 MC의 모든 걸 전수해주셨어요. '재필이는 개그맨이지만 네가 빛나는 게 아니라, 스타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그때 '경청'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웠어요. 처음엔 말을 많이 하려다 혼나기도 했어요. '듣는 직업이구나'라는 걸 그때 알았어요."
'한밤'을 통해 '듣는 법'을 배운 유재필은 그 배움을 쇼케이스 위에서 실천했다. 그 시작은 2019년 1월 3일, 모모랜드의 '뿜뿜' 쇼케이스였다.
"당시 모모랜드 소속사 이사님이 저를 발굴해주셨어요. 엄청 떨렸는데, 다행히 개그맨이라 '뿜뿜'의 밝은 콘셉트랑 잘 맞은 것 같았어요. '뿜뿜' 춤도 배우고 열심히 했죠. 지금도 그날 기사와 사진을 가끔 찾아봅니다. 하하."
첫 무대의 떨림이 여전히 생생한 한편, 실수도 있었다. "초창기 때, 포토타임 후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바로 무대로 들어간 적이 있었어요. 멤버 중 한 분이 '무대 전에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다행히 수습됐었죠. 그때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내가 완벽하다고 믿는 순간 실수한다'는 걸 알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웨이션브이 쇼케이스다. "당시 멤버들이 한국에서 가진 미디어 쇼케이스였어요. 딱딱한 분위기라 고민하다가 '이렇게 된 김에 각자 일어나서 매력 어필하자'고 했어요. 기자님들이 웃어주셔서 너무 뿌듯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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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런 수식어가 부담이었지만 이제는 감사해요. 수식어를 유지하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인정받았다는 생각보다 감사한 일이 많아요. 예전에 함께한 팀이 다음 쇼케이스에서도 '이번에도 재필 씨였으면 좋겠다'고 연락주실 때가 제일 행복해요."
그러면서 인연을 강조했다. "그룹 제로베이스원과도 여러 번 함께했어요. 이제는 멤버들이 먼저 챌린지 찍자고 제안할 때, 관계가 깊어졌다는 걸 느껴요. 인생도, 일도 결국 연결이라 생각해요."
신인 아이돌을 편하게 이끌어준다는 기획사들의 피드백도 잊지 않는다. "'재필 씨 덕분에 신인들이 덜 떨었던 것 같다', '편안한 분위기였다'는 말을 들을 때 제일 뿌듯해요."
팬들 반응 역시 원동력이다. "손태진 팬미팅 때 어머니 팬분들이 '우리 아들처럼 느껴진다'는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요즘엔 '우리 아이돌보다 재필 씨를 더 자주 본다'는 댓글도 봤죠. 진행 잘한다는 말보다 그런 얘기가 더 기분 좋습니다."
유재필의 세심한 태도는 미디어 쇼케이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유재필은 기자들의 질문을 그저 전달만 하지 않는다. 질문이 나오면 꼼꼼히 받아 적고, 아티스트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번 더 요약해 건넨다. 그리고 아티스트의 답변이 끝나면, 그 내용을 다시 간결하게 정리해 기자들에게 되돌려준다. 일종의 '통역자'이자 '조율자'인 셈. 사실 이런 세심한 진행이 가능한 MC는 많지 않다.
"기자님들이 오신 건 아티스트의 말을 듣기 위해서죠. 그래서 저는 인이어를 껴서 기자님 질문을 아티스트에게 한 번 더 전달하려고 해요. 그래서 질문을 들으면서 쓰려고, 펜도 어떤 게 빨리 써지는지 연구했어요. 모나미가 제일 빠르더라고요.(웃음)."
이처럼 기자도 믿고, 아이돌과 기획사도 의지하고, 팬도 사랑하는 이름. 늘 작은 습관 하나에도 신경 쓴 덕분일까. '쇼케이스계 유재석'이라는 수식어는 역시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리허설은 꼭 봐요. 아이돌이 어떤 감정으로 무대를 준비했는지를 보고, 그게 그대로 전달되길 바라요. MC가 그걸 못 짚어주면 안 되죠. 미디어 쇼케이스는 드라이하고 정확해야 하지만, 팬 쇼케이스는 에너지가 중요해요. 톤을 올리고, 아이돌의 끼를 최대한 잘 보여줄 수 있게 연결하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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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방송을 오래 해서 현실적인 피드백을 줘요. '이 부분에서 말을 더 들어야 한다', '옷 좀 신경 써라' 이런 조언들을 많이 해줬어요. 현실 남매죠. 서로 자료 조사할 때 너무 도움이 돼요. 누구보다 서로 잘 됐으면 하는 걸 바라는 사이니까요. 요즘엔 저도 팬 반응이나 현장 분위기를 누나에게 알려주며 도와주고 있어요. NCT 마크 솔로 데뷔 쇼케이스 때 MC를 했는데, '기가 막히네~' 이 부분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걸 누나한테 말했더니, '뮤직뱅크' 인터뷰 때 참고하더군요. 이 업계는 동료가 없다면 외로운데, 다행히 누나와 서로 으쌰으쌰하며 버팁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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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 패널로 나가고 싶다는 꿈도 품고 있다. "아이돌들을 현장에서 워낙 많이 보다 보니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것 같아요. 저 정말 자신 있어요(웃음)."
유재필의 활동 반경은 이제 MC도 넘어섰다. 가수로 음원을 발표하기도 하고, 때로는 배우로 카메라 앞에 선다. 최근에는 연극 무대에도 도전했다.
"MC는 누군가를 빛나게 하는 일이고, 음악은 나를 보여주는 일이죠. 둘 다 행복하지만 즐거움의 결은 다른 것 같아요. 연기도 마찬가지죠. 새벽 4시에 촬영장 가서 여섯 시간 대기하다가 한 줄 대사 하고 와요. 그런데 재밌어요. 'MC 유재필' 말고 다른 인물로 숨쉴 수 있다는 것도 좋아요."
끊임없는 시도와 도전은 유재필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10년을 맞은 '쇼케이스계 유재석'의 표정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이번에 해외에 K팝 시상식 레드카펫 MC로 갔어요. 해외 출장은 '한밤' 리포터 말고는 처음이었죠. 10년째에 받게 되는 선물 같아요. 그리고 연극도 대학로에서 하는데, 새로운 도전이라 잘 끝내고 싶어요."
끝으로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10년을 이렇게 정리했다. "'슈스케'에서 멜빵춤 추던 공군 상병이 여기까지 왔어요. 몬스타엑스, 트와이스와 데뷔 동기입니다(웃음). 20대 초반의 저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동안은 쌓아왔다면, 이제는 즐기고 싶어요. 틀리더라도 뭐 어때요. 또 하면 되니까요! 10년이면 내공도 쌓였으니, 이제 쑥쑥 자라날 시간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신을 '맛집'에 비유했다. "대중이 아직 저를 다 모르시지만, 단골이 생기고 있다는 게 기뻐요. 잠깐 반짝이는 유행 같은 식당이 아니라, 입소문으로 오래가는 맛집이 되고 싶습니다!"
정빛 기자 rightligh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