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품의 아프리카인] ⑿'BTS 너머 5·18까지' 알제리 20대의 남다른 한국 사랑

기사입력 2025-12-10 07:53

[촬영 임경빈 인턴기자]
[유슬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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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슬아 씨 "방탄소년단·K드라마로 한국에 매료…알제리 역사 닮은 5·18에 깊은 관심"

강원대 언론학 석사 뒤 뷰티회사 근무…"아버지 이어 기자 되면 사회문제 글 쓸 것 "

(서울=연합뉴스) 임경빈 인턴기자 =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생물학을 연구하던 20대 여성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언론인의 꿈을 안고 한국행을 선택했다.

한국을 알게 된 건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통해서였지만,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계기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접하면서부터다.

유슬아(본명 유스라 드리우아·26) 씨는 지난달 26일 서울시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가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한국어를 독학하며 언젠가 한국에 꼭 가고 싶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알제리 본명 유스라를 한국어로 음차해 유슬아라는 한국어 이름을 쓰는 유 씨는 현재 외국계 뷰티 플랫폼 한국지사에서 정규직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 대상으로 제품 홍보 콘텐츠를 제작하는 업무다.

유 씨는 "직장 동료들이 외국인이라 한국 회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며 "그래도 엑셀 업무가 많은 건 매한가지"라고 웃어 보였다.

그는 고국에서부터 K팝에 관심이 많았다.

엑스(X·옛 트위터)에 올라온 방탄소년단 노래 가사의 번역본을 보며 한국어를 독학했다.

유 씨는 "방탄소년단이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부터 좋아했다"며 "'아이 니드 유'(I NEED U)라는 곡을 처음 듣고 팬이 됐다"고 말했다.

'미생', '나의 아저씨'와 같은 한국 드라마도 즐겨봤다.

그는 "이들 드라마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도 미리 접했다"며 "좋은 면만 보고 한국을 찾는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알제리 오랑과학기술대학교(USTO)에서 생물학으로 학사학위를, 독성학으로 석사학위를 얻었다.

인턴십을 세 번 할 정도로 고국서 취업이 잘 되는 분야였다.

그러나 진로에 관한 고민은 끊이지 않았다.

유 씨는 "나는 활달하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며 "그런데 온종일 연구실에 있어야 하는 이 분야는 나와 맞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그러던 와중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기자로 일하시던 아버지의 사무실에 자주 놀러 갔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졌다"며 "그 기억을 살려 평소 좋아하던 한국에서 저널리즘을 제대로 공부해 보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한국정부초청 외국인 장학생(GKS) 사업에 지원해 두 번 만에 합격했다.

2021년 한국에 온 뒤 전남대 언어교육원에서 1년간 한국어를 배웠다.

광주국제교류센터 산하 영문 월간지 '광주뉴스(Gwangju News)'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취재와 기사 작성을 경험했다.

유 씨는 "처음에는 음식점 소개 등 가벼운 내용을 다루다가 점차 정치, 사회 등 진중한 주제의 기사를 썼다"며 "5·18 민주화운동을 겪었던 광주는 알제리와 비슷한 역사를 공유한다. 많은 희생자가 겪어야 했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830년부터 약 130년간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알제리는 독립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독립 이후인 1992년에는 군부 정권과 이슬람 무장세력 간 충돌로 알제리 내전이 벌어졌다.

'암흑의 10년'(Black Decade)으로 불리는 이 기간에 20만명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광주뉴스에서 활동하며 기억에 남는 취재로는 광주 난민 바자회를 꼽았다.

유 씨는 "광주에 거주하는 이집트,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 출신 난민 여성들이 주최한 바자회라 뜻깊었다"며 "그들이 한국 사회의 짐이 아닌, 경제 활동을 영위하며 사회에 적극 참여하는 주체임을 보여주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전남대 언어교육원을 마친 뒤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그는 "강원대 생활은 매우 만족스러웠다"며 "학과 수업을 들을수록 저널리즘 분야에 더 큰 흥미를 갖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실험을 통해 하나의 결과를 도출하는 생물학과 달리, 다양한 관점에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이 학문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외국인 유학생 홍보대사로도 활동하며 학교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유 씨는 "신입 유학생들 앞에서 강연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며 "입학 전에 알아두면 좋은 정보들을 알려줬다. 선배 유학생으로서 내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 뜻깊었다"고 말했다.

그는 활발한 학교생활을 바탕으로 우수 졸업자로 선정됐다.

졸업 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행사 주최 보조 및 통역, 웹사이트 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맡기도 했다.

정규직 마케터로 취업한 지금에도 저널리스트의 꿈을 놓지 않았다.

유 씨는 "기회가 된다면 정식 기자로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 문제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매주 토요일에는 미아사거리역 근처에 있는 대안교육기관 '달꿈예술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학교 건물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한다"며 "급여를 받진 않지만, 학교 운영 자금을 마련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 보람차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54개국을 하나로 연결하는 공통 분모가 무엇인지 물었다.

유 씨는 "인종과 종교는 다르지만 하나의 대륙으로서 공유하는 정신이 있다"며 "그것은 바로 낯선 사람을 기꺼이 환대하는 인간미"라고 힘주어 말했다.

imkb0423@yna.co.kr

<연합뉴스>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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