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2020년 11월 27일 이란 테헤란의 한 도로. 이란 핵 개발의 아버지 모센 파크리자데와 그의 부인을 태운 차량이 달리고 있었다. 차량의 앞뒤로는 경호 차량이 호위했다. 갑자기 총성이 울렸고, 파크리자데는 즉사했다. 파크리자데는 이스라엘 정보부 모사드가 2007년부터 제거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파크리자데를 쏜 저격수는 사람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세워진 픽업트럭에 숨겨진 원격조종 기관총이었다. 이 기관총에는 로봇팔이 장착돼 있었고, 사건 현장에서 1,600㎞ 떨어진 이스라엘에서도 조종이 가능한 인공지능(AI) 시스템이 탑재돼 있었다. 모사드가 한 일은 클릭 한 번뿐. 이에 따라 날아간 총알 15발은 정확하게 파크리자데만 맞혔다. 그의 옆좌석에 있었던 부인은 다치지 않았다.
최근 출간된 '인간 없는 전쟁'(북트리거)은 일상을 넘어 전쟁까지 틈입한 AI의 무시무시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광운대 경영학부에서 빅데이터를 가르치는 최재운 교수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최신 전쟁에서 사용되고 있는 'AI 전쟁 기계'들을 살펴봤다.
AI 기술은 이미 널리 쓰이고 있다. 압도적 전력을 보유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못 이기는 건 미국 주도의 AI 시스템 탓이 크다. 가령, 러시아군이 40일에 걸쳐 어렵사리 점령한 진지에서 발견했던 건 '샤블라'라 불리는 원격조종 기관총 포탑 하나뿐이었다. 샤블라는 기관총, 중기관총, 자동 유탄발사기 등 다양한 총기류를 장착하고, 표적을 자동으로 추적해 조준사격까지 수행할 수 있었다. 또한 열화상 센서와 광각카메라를 탑재해 야간에도 목표를 탐지해 적군을 사살했다. 우크라이나군이 한 일은 샤블라에 탄약을 보급하는 '보급병' 역할과 원격 조종뿐이었다.
촘촘한 진지구축도 AI가 활약하는 현대전에선 별반 소용없었다.
2023년 8월 로보티네 전투에서 러시아군은 15~25㎞에 걸쳐 지뢰밭과 참호, 콘크리트 장애물을 겹겹이 설치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연상시키는 전통적인 참호전이었다. 이런 철벽 방어에 우크라이나군은 처음 고전했다. 500m를 전진하는 데에도 막대한 희생이 뒤따랐다. 하지만 AI 도움을 받으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러시아군이 대응 사격을 하면 우크라이나군의 AI가 적의 위치를 파악했다. 이어 실시간으로 표적을 분석해 어느 포대를 먼저 제압할지, 보급로는 어디인지 등 모든 정보를 통합해 분석했다. 이런 AI 분석에 따라 우크라이나군이 지상, 해상, 공중에서 십자포화를 쏟아내자 러시아군의 철벽 방어선은 순식간에 와해됐다.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디지털전환부 장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고의 기술 테스트베드(시험대)"였다. 수만 대의 드론이 전장을 감시하고, 스타링크가 통신을 연결하며, AI가 정보를 분석한다. 개별 드론 하나는 보잘것없지만,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러시아라는 전쟁 기계를 압도했다. 이 같은 AI 전쟁에 팔란티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부터 이름 없는 수십 개의 스타트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우크라이나 전장에 참여해 얻는 직접적인 수익은 많지 않으나 신제품 개발, 서비스 개선 및 홍보 효과를 얻었고, 실전에서 검증된 기술은 다른 나라 국방부와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적을 색출하는 데에도 AI는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나 지하드 무장대원들의 전화 통화 패턴, 이동 경로, 만나는 사람들, 소셜미디어 활동 등 모든 데이터를 활용해 팔레스타인 주민 개개인이 무장대원일 가능성을 파악하고, 위험 점수를 부여했다. 마치 신용평가처럼 각 개인에게 점수를 매긴 것이다. 위험점수가 군이 정한 기준을 넘으면 자동으로 군사 표적이 됐다. 이 과정에서 AI 시스템인 '라벤더'가 사용됐다. 정보장교들이 한 일이라곤 라벤더가 추천한 표적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만 확인한 후 살생부에 도장을 찍는 일뿐이었다고 한다.
책은 통신망과 인간의 개입 없이 자율 비행하며 적군을 찾아내 사살하는 드론, 과거 데이터의 패턴을 찾아 미래를 예측하는 AI 예측분석 시스템, 인간의 판단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전장을 지휘하는 AI 플랫폼 등 신종 AI 무기 및 시스템을 다수 소개한다. 이와 함께 이들 기계의 판단을 맹신하는 인간의 모습도 함께 조명한다. 저자는 "AI 무기가 표적 식별 정확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려 전쟁의 참혹함을 줄일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정말로 이 기술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함께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