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5세대 보이그룹이 진화했다.
3~4세대 보이그룹의 특이점은 강렬한 퍼포먼스와 복잡하고 난해한 세계관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강력한 코어 팬덤을 운집시키는 효과는 분명했지만, 대중성까지 잡기는 어려웠다.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을 강타하면서도 정작 '이 노래 아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는 손 들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는 기현상이 벌어진 이유다.
그러나 5세대는 좀더 가볍고 친근하게 변모하고 있다. 난해한 콘셉트 대신 친근한 소통과 듣는 귀를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을 무기로 코어 팬덤을 넘어 대중적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유구한 '아이돌 명가'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라이즈다. 라이즈는 멤버들이 성장하면서 일상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풀어낸 독자 장르 이모셔널 팝으로 승부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모셔널 팝'의 경계가 없다는 것. 펑키한 데뷔곡 '겟 어 기타'부터 90년대 Y2K 감성을 풀어낸 '러브 119', 강렬한 레이지 힙합 '페임' 등 다채로운 장르와 콘셉트를 품어낸다.
15일 발매한 미니 2집 'II' 타이틀곡 '두 유어 댄스'도 마찬가지. '두 유어 댄스'는 힙합 비트와 일렉트로닉 팝 사운드가 결합된 업템포 댄스곡이다. '겟 어 기타' '러브 119'처럼 라이즈의 특장점인 '이지리스닝'과 청춘의 청량 성장 서사를 내세운 게 특징이다.
특히 이번 앨범은 SM이 왜 아이돌 명가인지를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SM은 무리한 세계관 대신 '말보다 무대'라는 정확한 콘셉트를 내세웠다. 엄청난 연습량에서 비롯된 멤버들의 자신감과 에너지를 청춘의 땀방울이란 서사로 연결시킨 것이다. 또 '헤드 힙스 숄더스 토즈'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며 대중적이고 직관적인 팝 사운드를 강조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힘을 뺀 코러스 안무는 처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SM에서 시작된 칼군무조차 버리는 결단을 내렸다. 이들의 쿨하고 여유로운 퍼포먼스는 라이즈의 최대 강점인 '힙하고 따라하고 싶은 무드'를 강화했다. 나아가 SM은 글로벌 패션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와의 협업, 예능 출격 등을 통해 라이즈에게 젠지의 워너비이자 문화적 아이콘으로서의 이미지를 심어줬다.
하이브 산하 레이블 KOZ엔터테인먼트(이하 KOZ)의 보이넥스트도어(이하 보넥도)는 4연속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며 무서운 기세로 팬덤을 확장하고 있다.
보넥도는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분방한 악동 이미지로 사랑받아온 팀이다. 이들은 명재현 운학 등을 필두로 멤버들이 직접 곡 작업에 참여하며 '자체 제작돌'이자 '실력파'의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세계관이나 콘셉트, 칼군무나 동선 등 어떠한 틀에도 갇히지 않고 종횡무진 무대를 뛰어다니는 멤버들의 에너지에는 보는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보넥도의 경우 팬덤의 화력에 비해 음원 차트를 장기 집권하는 메가 히트곡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있긴 했다. 그래서 하이브와 보넥도는 이번 정규 1집 '홈'을 발매하면서 관점을 완전히 비틀었다. 연습생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보넥도만의 음악을 한다는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성을 강화한 음악으로 승부를 건 것이다.
타이틀곡 '바이럴'은 보넥도의 각오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곡이다. 가사도 그렇지만 노래 전반에 2000년대 유행했던, 중독성 있는 후크와 칼군무로 무장했던 K팝 공식을 다시 꺼내들어 3040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고 1020 세대가 추구하는 Y2K 트렌드까지 정확하게 잡아냈다. 이를 통해 보넥도는 4연속 밀리언셀러라는 대기록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Mnet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제로베이스원은 프로젝트 그룹 활동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졌던 팀이다. 프로젝트 그룹은 시한부 활동 종료 이후 여러 갈래로 팀이 나뉠 수밖에 없고, 팬덤 또한 찢어질 수밖에 없다는 리스크가 있다.
그러나 제로베이스원은 달랐다. 공백기 없이 기존의 멤버들이 남은 제로베이스원과 원 소속사로 돌아간 파생 그룹 앤더블이 비슷한 시기 컴백하고, 서로 다른 팀으로 갈라진 뒤에도 여전한 우정을 간직한 멤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윈윈 전략의 효과가 좋았다.
제로베이스원은 성한빈 김태래 박건욱 석매튜 등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았던 멤버들이 고스란히 남으면서 무대 퀄리티에 안정감을 가져갔다. 여기에 제로베이스원 특유의 청량함에서 탈피, 좀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며 웰메이드 네임밸류를 입증했다.
YH엔터테인먼트로 돌아간 장하오 리키 김규빈 한유진은 이븐 출신 유승언과 함께 앤더블로 돌아왔다. 앤더블은 데뷔곡 '큐리어스' 발매와 동시에 보컬과 춤선, 비주얼이 검증된 에이스 멤버들의 조합으로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고, 제베원의 강점이었던 글로벌 코어 팬덤을 온전히 흡수했다.
현재 5세대 시장은 IP 분할 및 유지 전략이 얼마나 통하는지를 시험하는 무대다. SM은 라이즈를 통해 보이그룹의 이지리스닝 시대를 열었고, 하이브는 보넥도의 자체 제작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제로베이스원과 앤더블은 검증된 멤버들의 실력과 비주얼을 극대화한 하이엔드 브랜딩으로 팬덤을 유지하고 있다. 각자의 생존 방식으로 진화한 5세대 보이그룹의 행보에 기대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백지은 기자 silk781220@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