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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의 인생이다.
프로에 첫 발을 내민 것은 2006년이었다. 고려대를 졸업한 뒤 우선지명으로 FC서울에 입단한 그는 탄탄대로 인생에서 처음으로 쓴 맛을 봤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A형 간염 등 잔부상에 시달렸다. '2~3개월 재활→1~2주 복귀'를 반복했다. 여효진은 "기대를 많이하고 프로 무대에 뛰어 들었는데 만만치 않았다. 내 기량을 보여주고 싶어도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병역 문제 해결이었다. 그런데 좀처럼 부상의 악령을 떨칠 수 없었다. 서울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정강이가 문제를 일으켰다. "1년을 뛰지 못하다 다시 그라운드를 누비니 몸 상태가 좋아졌다. 2007년 꾸준히 출전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욕심이었다. 조절을 하며 뛰었어야 했는데…. 정강이 쪽에 피로골절이 생겼다. 참고 뛰었다. 하지만 이듬해 5월 경기 도중 정강이가 골절되는 중부상을 입고 완전히 시즌을 접어야 했다." 여효진은 2008년 6월부터 2009년 서울로 복귀한 뒤 8월까지 1년 2개월을 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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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반 황보관 감독이 지휘봉을 잡을 때까지만 해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황 감독이 경질된 뒤 더이상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떠오르던 해는 순식간에 지는 해로 변했다.
어느덧 적지않은 나이가 됐다. 인생의 기로에 섰다. 그러던 순간 한 줄기의 빛이 다시 비췄다. 안익수 부산 감독의 러브콜을 받았다. 2010년 도치기로 임대가기 전 당시 서울 수석코치던 안 감독과 3주간 동계훈련을 할 때 인연을 맺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임팩트는 강했다. 안 감독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여효진의 부활을 돕고 싶었다. 특히 곱상한 외모로 또 한명의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하지만 여효진은 따뜻한 봄을 맞기도 전 또 다시 쓰러졌다. 오른무릎 후방 십자인대를 다쳤다. 현재 서울에서 인대가 부분적으로 끊어졌는지, 완전히 끊어졌는지 검사를 받고 있다. 의사마다 소견이 달라 수술과 재활 훈련 중 하나를 고민 중이다.
걱정은 산더미다. 그러나 '반드시 이겨내겠다'는 의지는 하늘을 찌른다. "주위에서 '또 다쳤구나.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실 것이다. 지금까지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화려하게 꽃 피우지 못했다. 그렇지만 반드시 아픔을 이겨낼 것이다. 나를 믿어준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여효진은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