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영웅' 설기현은 그때를 보고 자란 젊은 선수들의 멘토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이효균 설기현 진성욱(왼쪽부터) 괌=박찬준 기자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을 직접 관전한 한 소년은 '나도 빨리 대표선수가 돼서 월드컵에서 뛰어봤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다. 다른 소년은 2002년 월드컵을 보고 축구를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의 기억을 품고 자란 소년들은 어엿한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K-리그 무대를 밟았다. 그들이 우상으로 했던 설기현(33)과 함께 같은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주역이었던 설기현에게도, 그때를 보고 자란 '2002년 키드' 진성욱(19)과 이효균(24)에게도 2002년 월드컵은 소중한 추억이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같은 팀에서 멘토와 멘티의 관계가 됐다. 당시 23세였던 설기현은 팀내 최고참으로 변했다. 최전방 원톱 자리를 두고 진성욱 이효균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설기현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설기현과 같은 방을 쓰는 이효균은 "기현이형을 보고 배우는게 많다. 몸관리나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저러니까 대선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2002년 월드컵은 한국 축구의 지형을 바꿨다. 좋은 선수들이 대거 배출됐다. 설기현은 "우리때보다는 기술이 더 좋아졌다. 2002년 후에 체계적인 시스템에서 훈련해서 그런지 기본기나 기술이 많이 좋아졌다. 경기할때 침착성같은 것을보면 더 낫다"고 했다. 그러나 선배는 더 많은 것을 끌어내고 싶었다. 직접 본보기가 되기로 했다. 설기현은 연습 30분 전에 나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연습 후 곧바로 다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2002년 월드컵때 거스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웨이트의 중요성을 배웠다. 직접 지시하지 않았지만, 선배의 본보기에 후배 선수들도 하나둘씩 따라하기 시작했다. 설기현은 "올시즌 목표는 좋은 성적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허정무 감독도 그래서 날 불렀다.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전수해주고 싶다"고 했다.
설기현. 괌=박찬준 기자
설기현은 후배들에게 목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진성욱과 이효균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머뭇거리며 "국가대표"라고 힘없이 말했다. 후배들 앞에서 부드러웠던 설기현이 "국가대표가 목표라고 말하는게 부끄러운게 아니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소리높여 말했다. "고등학교때 새감독이 왔는데 장래희망을 적어야 했다. 국가대표라고 적고 싶었다. 그런데 시골에서도 예선탈락하는 학교에서 이런걸 적으면 선수들이 놀릴까봐 두려웠다. 그래도 용기 내서 적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당시 기록을 적었던 걸 본 선배가 얘기해줬는데 국가대표라고 적은 애가 나뿐이었다고 했다. 다들 회사원, 당구장주인이라고 적었더라. 부끄럽지 말고 당당하게 얘기하고 목표를 향해 나갔으면 좋겠다."
설기현은 "2002년 월드컵이란 선수로서 굉장히 많은 것을 얻게 해준 대회이자 큰 경험이었다. 내가 축구하는데 자부심과 자신감이 된 시기였다. 그때만 생각하면 즐겁고 행복하다. 내가 느꼈던 부분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했다. 2002년의 영웅은 그때를 보고자란 2002년 키드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심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