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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전성기요? 지금이죠."
한동진은 원주 상지대를 졸업한 후 2002년 부천SK(제주 전신) 유니폼을 입었다. 어느 덧 10년이 흘러 부천 멤버 가운데 제주에 남은 이는 한동진, 박진옥(30) 뿐이다. 스포트라이트는 그의 축구 인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원주 태장초등학교 4학년때 키가 크다는 이유로 축구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의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언제나 2인자였다. 원주공고에서의 활약으로 1999년 나이지리아 청소년 월드컵(20세 이하)에 나섰지만, 당시 주전이었던 김용대(33·서울)에 밀렸다. 프로에 데뷔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라운드에 선 것보다 벤치에서 기다린 시간이 많았다. 입단 2년 차인 2003년 31경기에 출전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1경기도 나서지 못했고 2005년 광주 상무에 입대했지만 3경기 출전에 머물며 주로 벤치를 지켰다. 2007년 전역 후 팀에 복귀했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2010년과 지난 시즌에는 각각 1경기에서 골키퍼 장갑을 끼는데 그쳤다.
그런 그에게 복덩이가 찾아왔다. 1월에 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사실 그에게 아픔이 있다. 2010년 유산의 기억이 있다. 경기에 나서지도 못하고, '왜 나에게만 불운이 찾아오냐'며 눈물도 많이 흘렸다. 마음이 약해질 무렵 소중한 생명이 태어났다. 아들의 웃음에 한동진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오히려 편안한 마음이 그를 감쌌다. 사실 제주는 전태현(26)을 키워볼 작정이었다. 한동진에게는 전태현에게 경험을 전수하고 심리적인 부분을 잡아주는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몸상태가 좋았다. 박경훈 감독은 광주전 패배(2대3) 이후 한동진에게 골문을 맡기기로 했다. 한동진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제주는 올시즌 그가 골문을 지킨 경기(4승2무)에서 한번도 지지 않았다.
14일 포항전은 그의 이름을 알린 기회였다. 한동진은 3-2로 앞서고 있던 후반 16분 지쿠의 페널티킥을 막아냈다. 사실 페널티킥은 그의 전공분야다. 1997년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할 당시 16강전부터 준결승까지 모두 승부차기 승리를 거둔 적도 있다. 초등학교때도, 중학교때도 페널티킥만은 자신있었다. 포항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페널티킥은 키커가 유리할 수 밖에 없다. 편하게 마음 먹고 지쿠의 심리부터 읽었다. 지쿠가 테크니션인만큼 강하게 차거나 먼저 차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지쿠의 킥은 강하지 않게 몸을 날린 방향으로 왔다. 한동진은 그날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한동진은 올해 계약이 끝난다. 아직 몸상태가 좋은만큼 2~3년 정도 그라운드에 서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직까지 젊은 선수들과 훈련하고 뛰는게 행복하다. 김병지(42·경남)처럼 40세까지 뛰고 싶지만, 경쟁에서 밀린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 물러나겠다는 각오다. 이후에는 지도자 자격증을 따서 선수들을 가르칠 생각이다. 자신처럼 빛을 보지 못한 선수들에게 애정을 주겠다는 뜻을 세웠다. 한동진은 스스로 지금이 축구인생의 전성기라고 말한다. 성실하게 하루를 1년 같이 살아온 그에게 느즈막히 찾아온 기회다. 그는 이러한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다.'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그의 좌우명은 틀리지 않았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