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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대전 시티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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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시티즌의 외국인 선수사(史)에 '괴짜'란 단어를 포함시켜야 할 듯 하다. 지난시즌 브라질 출신의 박은호(바그너)가 한국식 개명과 화려한 세리머니로 '괴짜' 호칭을 얻었다. 올시즌에는 'K-리그 최초의 벨기에 출신 외국인 선수' 케빈 오리스(대전)가 계보를 잇고 있다.
케빈은 평소에는 신사 같다. 유럽 출신 답게 점잖고 무게감있는 모습으로 훈련장에 나선다. 훈련장에서도 개인의 욕심 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한다. 패스가 오지 않는다고 짜증내는 여타 욕심 많은 외국인 선수들의 모습을 케빈에게서는 찾을 수가 없다. 항상 자신을 낮추고 늘 배우려고 한다. 그래서 동료들의 신망이 두텁다.
경기장 밖에서는 달라진다. 일단 짠돌이다. 흥청망청 써대는 유럽 축구선수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구단이 해준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는 케빈은 전기세가 나오면 10원까지 꼼꼼이 살핀다. 납득할 수 없는 금액이 나오면 구단 직원을 통해 알아보기도 한다. 백화점 보다는 재래시장을 선호한다. 저렴한 물건이 많고, 무엇보다 한국의 맛과 정을 느낄 수 있는 재래시장에 흠뻑 빠졌다.
겁도 없다.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에 오면 가장 어려워 하는 것이 음식이다. 그러나 케빈은 한국 토속 음식을 먹는데 주저함이 없다. 한국 사람도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도 잘 먹는다. 오히려 지방에 내려가면 특이한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을 정도다. 경기장 밖에서 겁이 없는 그였지만, K-리그의 그라운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케빈은 시즌 개막전 가장 주목해야 할 공격수였다. 연습경기에서 연신 골을 터뜨린 그는 '경계대상 1순위'였다. 그러나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다. 9경기 동안 한골도 넣지 못하며, 위협적인 장면은 만들지도 못하는 그에게 '최악의 외국인 선수', '먹튀'라는 오명이 쏟아졌다. 유상철 대전 감독은 부쩍 자신감이 떨어진 케빈에게 맞춤형 훈련을 실시했다. 원정 명단에서 제외되는 것에 큰 자극을 받은 케빈은 체중을 4㎏를 빼며 독을 품었다.
"내 마지막 경기가 될지도 몰라(This will be my final game)"고 했던 지난달 5일 수원(2대1 대전 승)과의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자신감을 회복한 케빈은 5월 이후 5골을 폭발시키며 팀 상승세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대전은 케빈의 활약 속에 강등권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퇴출 0순위로 꼽혔던 그는 유 감독의 신임을 다시금 얻었다. 유 감독은 "케빈은 원래 골을 넣는데는 재주가 있는 선수였다. 자신감이 문제였다. 이제 비로소 내가 알던 케빈의 모습이다. 올시즌에는 그와 함께 계속 갈 것이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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