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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마라도나(52·아르헨티나)'는 전설이다. 그의 선수 시절 업적과 성적을 일렬로 쭉 늘여놓으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서울까지 왕복할 정도다.
2008년 10월 마라도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감독 마라도나'였다.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마라도나를 A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했다. 지도자로서 첫 도전은 아니었다. 마라도나는 1994년 미국월드컵 출전 당시 도핑 양성반응으로 한동안 선수로 나서지 못했다. 이 기간중인 1995년 자국리그의 데포르티보 만디유와 라싱 클럽에서 지도자를 맡은 적은 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이 사실상 '감독 마라도나'에게 첫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로서는 고육지책이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남미예선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4승4무2패(승점 16)로 파라과이, 브라질에 이어 3위로 밀려 있었다. 특히 직전 5경기에서 4무1패로 부진했다. 바실리 감독이 경질됐다. 전술의 문제는 크지 않았다. 선수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했다. 현역 시절 최고의 선수였던 마라도나의 이름값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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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도 있었다. 월드컵 예선 마지막 라운드였던 우루과이와의 원정경기에서 1대0으로 승리하며 4위에 올랐다. 극적으로 본선 직행 티켓을 손에 거머쥐었다. 하지만 이미 마라도나로부터 등을 돌린 여론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본선에서 마라도나는 비상을 꿈꿨다. 리오넬 메시, 카를로스 테베스, 곤살로 이과인 등 최고의 공격수들을 앞세웠다. 조별리그에서 한국을 4대1로 꺾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독일과의 8강전에서 0대4로 패퇴했다. 마라도나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인연도 거기까지였다.
'감독 마라도나' 시즌 2의 무대는 중동이었다. 2011년 5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연고를 둔 알 와슬이 마라도나 감독을 영입했다. UAE축구는 마라도나 덕에 자신들의 이름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라도나는 감독으로서는 낙제점이었다. 알 와슬은 정규리그에서 12팀 중 8위로 처졌다. 아시아챔피언스 리그 출전권도 따내지 못했다. 아랍권 프로 축구팀이 참여하는 걸프클럽컵(GCC) 챔피언스 리그에서 결승에 올랐지만 우승을 놓쳤다. 마라도나 영입을 주도했던 이사진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기행도 끊이지 않았다. 알 와슬 부임 이후 첫 승리를 챙겼다. 자신의 손자 이름이 걸린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다 팬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 팬이 손으로 손자의 이름을 가린다는 것이 이유였다. 마라도나는 그 팬의 손을 발로 차버렸다. 또 다른 경기에서 자신의 여자친구를 비난하는 팬에게 돌진해 주먹을 날렸다. 경기가 없는 날 집에 틀어박혀 있던 마라도나는 집근처를 배회하는 기자를 향해 공기총을 쏘기도 했다.
결국 알 와슬은 10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마라도나 감독과 코치진을 경질했다. 계약 기간을 1년 반정도 남기고 '감독 마라도나'의 시즌2는 막을 내렸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