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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소집된 최강희호 3기. 전원 K리거로 구성됐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과 해당 리그 개막을 앞둔 해외파 선수들을 무리하게 불러들일 수 없었던 최강희호 감독의 선택이었다. 이미 K리그에서 날아다니며 능력이 검증된 선수들에게 태극마크 테스트의 기회를 제공한 잠비아전, "오빤 K리그 스타일"뿐 아니라 "오빤 대표팀 스타일"이라고도 당당히 외치길 꿈꾸는 18명의 선수가 여기 있다. 이 중 어떤 선수가 가장 눈에 띄는가. 개인적으론 단연 김형범이다. 대체 얼마 만인가.
오뚝이 같았다. 2009년 7월, 수원을 상대로 드디어 복귀 무대에 섰다. 지독한 재활 끝에 다시 선 K리그 무대, 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에게 허락된 건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뿐이었다. 오른쪽 코너 플래그 앞 지점에서 곽희주와 경합하던 김형범은 비가 오는 그라운드에서 미끄러졌고, 몸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그는 이내 땅을 치기 시작했다. 이번에 빠진 어두컴컴한 부상의 터널엔 과연 끝이 있기나 한 걸까 싶었다. 전북이 2009, 2011 K리그 우승, 2011 ACL 준우승을 비롯해 '닥공'이라는 브랜드로 아시아를 호령하고 있을 동안 그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플레이의 임팩트 만큼이나 부상의 임팩트도 어마어마하게 컸던 게 김형범의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지난해 9월엔 은퇴까지 결심했다던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 대전 유상철 감독. 임대로 적을 옮긴 대전에서 그는 거짓말처럼 또 한 번의 전성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올 시즌 20경기 4골 7도움, 아직 2012 시즌이 석 달도 더 남았지만, 그가 뛴 경기 수는 데뷔 이래 9년 중 네 번째로 많으며(2008년 31경기, 2004년 29경기, 2006년 28경기), 공격 포인트는 본인의 최다 기록 11개(2006년 7골 4도움 11개, 2008년 7골 4도움 11개)에까지 올라섰다. 그럼에도 그가 정한 목표는 단 하나였다. 대표팀 복귀도 아니었고, 더 많은 골과 도움도 아니었다. 그저 '부상 없는 시즌을 보내는 것'.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