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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슬램' 최용수 시대가 활짝 열렸다
6년이 흘렀다. 그동안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거치면서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잡았다. 2000년 그는 첫 K-리그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34경기에서 14골-10도움을 기록, '10-10'을 달성했다. 경쟁자가 없었다. '꽃중의 꽃'인 MVP(최우수선수)의 영예를 안으며 K-리그 최고봉에 올랐다.
정상에 있을 때 그는 K-리그를 떠났다. 일본 J-리그에서 전성기를 이어갔고, 2006년 친정으로 돌아왔다. FC서울의 프랜차이즈 스타 최용수는 그 해 8월 은퇴,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코치로 있으면서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을 보냈다. 하지만 눈은 감고 있지 않았다." 이장수→귀네슈→빙가다→황보관 감독을 보좌하면서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감췄다. 배우고 또 배웠다.
구단은 한때 외국인 감독도 고려했다. 묘수는 없었다. 최용수 감독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대행 꼬리표를 뗐다. 더 이상 눈물은 없었다. 환희의 마침표를 찍었다. 2012년 K-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최 감독은 한 시즌내내 선수들과 줄다리기를 했다. 때론 당근, 때로 채찍으로 선수단을 장악했다. 주장 하대성은 "1년 365일 서울의 훈련장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서울의 우승은 바로 최 감독이 빚어낸 작품이다. 최 감독은 한 팀에서 선수(2000년), 코치(2010년), 감독(2012년)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린 첫 K-리거로 등극했다.
올시즌 K-리그가 2일 문을 닫았다. 최 감독은 3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2012년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또 다른 기쁨을 누렸다. 감독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신인상, MVP, 감독상의 영예를 안으며 또한번 첫 K-리거로 역사에 남게 됐다.
최 감독은 올시즌 지도자로서 성적표가 51점에 불과하다고 했다. 41세인 그는 이제 걸음마를 뗐다. "진정한 평가를 받기 위해 끝이 아닌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내년 시즌을 준비할 것이다. 더 철저하게 할 것이다. 진검승부는 지금부터다." 입술을 깨문 그는 내년 아시아 정상에 도전한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