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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동현. 스포츠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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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마다 유난히 잘 풀리는 상대팀이있다. 전성기 시절 박찬호는 시카고 컵스만 만나면 힘을 냈고, 맨유 시절 박지성은 풀럼만 만나면 펄펄 날았다.
서동현(제주)에게 수원이 그런 팀이다. 그는 1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과의 원정 경기에서 전반 15분과 32분 아크 정면 두 차례 오른발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서동현의 시즌 1, 2호골이었다. 제주는 서동현의 두 골에 힘입어 2대1 승리를 거두고 2위 자리를 지켰다.
공교롭게도 수원은 서동현의 친정이다. 서동현은 2006년 수원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2008년 전성기를 맞았다. 주로 조커로 나선 서동현은 13골-2도움을 기록하며 수원 삼성의 우승을 이끌었다. 맹활약으로 대표팀 유니폼도 입었다. 그의 등장은 곧 승리를 의미했다. 거칠 것이 없이 전진할 것처럼 보였던 그의 축구인생은 바로 추락을 맞이했다. 2008년 이후 갑작스레 부진이 찾아왔다. 2009년에는 한골도 기록하지 못하고 결국 강원FC로 트레이드됐다. 강원에서도 부진을 이어간 서동현은 지난해 제주로 이적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12골을 넣으며 제주 공격의 한축을 담당했다. 부활의 시발 역시 친정 수원과의 격돌이었다. 지난 시즌 마수걸이 골 역시 수원전이었다. 서동현은 올해도 6경기 무득점 부진을 이날 수원전에서 끊고 한꺼번에 2골을 넣었다. 제주 입단한 뒤 수원전 5경기 4골이다.서동현은 "수원엔 나쁜 감정이 하나도 없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팀이다.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몸 담았던 팀이고 수원 선수들의 장단점을 많이 파악하고 있다. 빅버드에 오면 홈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며 수원에 강한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이번 골이 터지기 전까지 마음고생이 심했다. 서동현은 지난 2월 동계훈련 도중 쇄골을 다치는 부상을 입었다. 3월 내내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서동현은 "절망적이었다, 12월이었으면 괜찮은데 개막이 한달도 안남은 상황에서 부상이었다. 전에 부상당했던 부위라 걱정이 더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가족의 힘과 성실한 재활훈련으로 극복했다. 서동현은 유명한 딸바보다. 그는 "딸이 이제 막 돌이 지났다. 집에 들어갈때 초인종을 누르면 막 손짓하면서 좋아한다. 그런게 큰 힘이었다"며 웃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복귀에 성공했지만, 성적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쉬운 찬스를 놓쳤다. 강력한 수비로 상위권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결정력은 제주 최고의 고민이었다. 그러나 박경훈 감독은 서동현에 대한 믿음을 접지 않았다. 서동현은 "매 경기 찬스가 있었는데 못 살렸다. 감독님의 믿음이 없었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만족시켜 드리지 못했는데 믿고 기용해주셨다.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넣고 팀에 도움이 돼 기쁘다. 감독님께 보답해서 기쁘다"고 했다. 박기동, 마라냥 등 경쟁자와의 싸움에서도 한발 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박 감독 역시 "서동현의 시즌은 지금부터다"고 웃었다.
서동현은 이날 특별한 세리머니를 펼쳤다. 골을 터트린 뒤 기다렸다는 듯이 유니폼 안에 입고 있던 티셔츠를 보였다. '소울 크라이 사랑의 시작은 고백에서부터 많이 많이 사랑해주세요!' 서동현은 "개인적으로 아는 형이다. 인천전이 끝나고 밥먹으면서 골 넣으면 세리머니 하겠다고 했다. 평소에 도움을 많이 주는데 요즘 일본 활동을 하면서 힘들어 하는 거 같아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며 "적으면서 왠지 골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빨리 골이 터져서 기분이 더 좋았다"고 했다.
서동현의 별명은 '레인메이커( 미국 인디언 사회에서 유래된 말로 가뭄이 들면 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사를 올려 단비를 청하는 역할)'다. 제주에 골이 필요한 시점, 그의 별명에 걸맞는 활약을 펼쳤다. 그의 부활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노리는 제주는 날개를 달게됐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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