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 감독이 보여주는 '감독의 조건'

기사입력 2013-05-29 08:03


사진제공=제주 유나이티드

"우리 감독님이 박경훈 감독님만 같으면 진짜 제대로 홍보해 볼 수 있는데…."

한 구단 프런트의 말이다. K-리그가 30주년을 맞았다. 강산이 세번 변한 시간이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K-리그의 과제는 관중동원이다.

최근들어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수들과 구단 프런트들이 적극적으로 관중몰이에 나섰다. 학교로, 거리로 뛰어들었다. 온라인상에서도 SNS를 통해 홍보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감독들은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다. 40대 젊은 감독들이 등장하며 인식의 변화가 생겼지만, 감독들의 영역은 언론 대응과 경기에 한정돼 있다. 심지어 선수들의 홍보활동에 난색을 표하는 감독들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군복을 입고 경기장에 나선 박경훈 제주 감독(52)의 행보는 주목할만 하다.

K-리그 클래식 13라운드에서 가장 뜨거웠던 곳은 제주였다. 제주와 서울은 공격축구의 진수를 선보이며 4대4 무승부를 기록했다. 올시즌 최고의 명승부를 펼치며 클래식의 묘미를 선보였다. 경기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것은 관중수다. 무려 1만8751명이 이날 제주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제주는 대표적인 축구불모지다. 제주는 연고지 이전 후 준우승 등 꾸준한 성적을 올렸지만, 제주월드컵경기장은 텅 비었었다. 그런 제주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최근 3년 동안 지역 연고 마케팅에 집중한 제주는 눈에 띌 만한 관중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 구단 프런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성과가 아니다. 구단의 얼굴은 역시 선수단이다. 선수단이 구단의 홍보 정책을 얼마나 잘 따라줄 수 있는지는 홍보 마케팅 전략의 가장 중요한 열쇠다. 박 감독은 이런 코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지도자다.


사진제공=제주 유나이티드
박 감독은 구단 홍보에 관해서는 무조건 '예스맨'이 된다. 직접 팬들을 만나고, 선수들을 동원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오히려 선수단에 홍보활동을 독려한다. 이번 서울전 역시 박 감독의 적극적인 협조와 희생이 숨어 있었다. 제주는 서울전을 '탐라대첩'이라 명하고 대대적인 홍보활동에 나섰다. 제주방어사령부의 지원아래 장갑차, 박격포 등 각종화기가 경기장 주변에 배치됐고, 해병대원들이 거수 경례로 관중들을 맞이했다. 건빵과 전투식량도 동원됐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군복차림의 박 감독이었다. 사실 감독이 전투복을 입고 팬들 앞에 서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박 감독은 흔쾌히 구단 직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치열한 경기 후였지만 다시 군복을 착용하고 관중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박 감독은 "사실 조금은 창피했다. 그래도 팬들을 위해 입었다. 팬들이 한 명이라도 더 경기장을 찾을 수 있도록 경기력 외의 볼거리를 선사하는 것도 게을리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패션 역시 관중들을 위한 박 감독의 주요 전략 중 하나다. 박 감독은 K-리그를 대표하는 패셔니스타다. 그는 아무리 추워도 롱 패딩점퍼를 입지 않는다. 정장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 전날 날씨와 징크스 등을 고려해 완벽 코디를 마친다. 프로라면 팬들 앞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박 감독은 "프로라면 자신을 가꿔야한다. 옷도 깔끔하게 입고 머리도 예쁘게 다듬고 사소한 소품까지 생각해서 꾸미면 팬들이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며 "우리 선수들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옷도 최신 흐름에 맞게 짧게도 입는다. 행커치프도 꽂는다"며 웃었다.

만원 관중이 모인다 해도 매력 없는 경기를 펼치면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난다. 제주는 K-리그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격축구를 펼친다. 공격축구를 부르짖는 감독 조차 두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내세운다. 안정된 결과를 얻기 위해서다. 그러나 제주는 예외다. 송진형 윤빛가람 등 테크니션을 앞세워 마지막까지 '공격 앞으로'를 외친다. 특히 홈에서는 더더욱 극강의 공격축구를 내세운다. 이기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박 감독은 "나라고 왜 잠그고 싶지 않겠는가. 공격축구는 팬들에 대한 약속이자 의무다. 경기장까지 팬들을 끌어오는데 엄청난 노력이 든다. 그들이 다시 경기장을 찾도록 만드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의무다. 공격축구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고 했다.


박 감독이 팬들에게 한 유명한 공약이 있다. "제주월드컵경기장에 관중 2만명이 들어온다면 오렌지색으로 염색하겠다." 이 공약 선포 이후 제주 직원들은 매 홈경기마다 오렌지색 염색약을 준비해 놓는다. 박 감독도 두피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제는 '오렌지족' 박 감독이 보고 싶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지도자가 늘어난다면 더 많은 관중들이 클래식을 찾을 것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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