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승부의 대명사 김치우 그리고 어머니

기사입력 2013-06-05 13:05



굴곡은 인생의 한 장이다. 굴곡없는 선수는 없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풍생중 3학년 때 유명을 달리한 어머니만 떠올리면 지금도 아프다. 그의 어머니는 풍생중 1학년 때 위암에 걸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강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아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녹색 그라운드를 찾았다.

그러나 눈물이었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1학년이라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경기장에서 용기를 복돋워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능력 밖이었다. 그리고 2년 간의 투병 생활 끝에 어머니는 그의 곁을 떠났다. 아버지란 존재는 머릿 속에서 지운지 오래다. 어릴 때 어머니와 헤어진 후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외조부모와 함께 살았고, 그 때부터 축구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현실에 없다. 인천 시내 한 사찰에 영정이 모셔져 있다. 하지만 휘슬이 울리면 함께 호흡하고 있는 것을 믿고 있다.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유난히 '극적'이란 단어를 잘 이끌어내는 선수가 있다. 김치우(30·서울)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승부근성은 그의 전매특허다.

2009년 4월 1일,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5차전 북한전(1대0 승)이 열렸다. 그는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골은 좀처럼 터지지 않았고, 경기는 득점없이 무승부를 끝날 것 같았다. 수비수 2명이 교체된 후 '오늘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남은 교체 카드 한 장은 당연히 최전방 공격수라고 판단했다. 그 순간 호출을 받았다. 후반 42분 프리킥으로 극적인 결승골을 터트렸다. 허정무호는 북한전 승리를 앞세워 6차전 UAE전(2대0 승)에서 조기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소속팀에서도 그랬다. 2010년 FC서울이 10년 만에 K-리그에서 우승컵을 거머쥔 데는 김치우의 마침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막은 2010년 11월 7일이었다. 서울은 정규리그 최종라운드에서 대전과 맞닥뜨렸다. 선두 서울(승점 59)과 2위 제주(승점 58)의 승점 차는 불과 1점이었다. 서울은 전반 3분 정조국의 선제골로 앞섰지만 후반 22분 대전에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1-1. 인천과 격돌한 제주가 승리하면 순위가 뒤바뀌는 형국이었다. 그 순간 그의 발끝이 폭발했다. 후반 42분 전매특허인 왼발이 아닌 오른발로 결승골을 터트리며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었다. 그 시즌 마수걸이 골이었고, 서울은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다.

2막은 12월 1일 이어졌다. 제주와의 챔피언결정 1차전, 0-2로 끌려가던 서울은 후반 13분 데얀의 만회골로 추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정규시간이 후반 45분에 멈췄지만 스코어는 그대로였다. 인저리타임이 열렸다. 행운의 사나이는 다시 한번 숨막히는 기적을 연출였다. 김치우였다. 제파로프의 패스를 받은 그는 경기 종료 1분여를 남겨두고 아크 정면에서 오른발로 동점골을 뽑았다. 서울은 극적으로 기사회생했고, 2차전에서 승리하며 챔피언에 올랐다.


5일(한국시각) 김치우는 최강희호를 벼랑에서 건져냈다. 패배의 먹구름이 드리워진 경기 종료 직전 프리킥으로 천금같은 동점골을 터트렸다. 반전의 씨앗이었다. 무승부는 아쉽지만 승점 1점의 의미는 크다.

한국은 승점 11점(3승2무1패)으로 A조 선두로 뛰어올랐다. 우즈베키스탄과 승점이 같지만 골득실(한국 +6, 우즈베키스탄 +2)에 섰다. 이란이 이날 카타르를 1대0으로 꺾고 승점 10점(3승1무2패) 고지에 올라섰다.

한국은 안방에서 11일 우즈베키스탄(오후 8시·서울)과 7차전, 18일 이란(오후 9시·울산)과 최종전을 치른다. 안심할 수 없으나 여전히 열쇠를 쥐고 있다. 김치우의 한 방이 선물한 희망이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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