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만났다. 여기서 만날 때가 아니다. 만나더라도 본선 조별리그나 16강 이후의 토너먼트가 어울린다. 축구팬들의 머리 속에는 2004~2005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UCL) 4강전 맞대결의 여운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다.
PSV 에인트호벤과 AC밀란이 2013~2014시즌 UCL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올림피크 리옹과 레알 소시에다드, 페네르바체와 아스널 등 강팀들이 격돌한다. 플레이오프에서 강팀들끼리의 격돌은 UCL 본선 조별리그의 재미를 떨어지게 한다. 본선의 경기 수준도 크게 낮아진다. 갑자기 UCL이 왜 이렇게 됐을까.
2009~2010시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은 UCL에 메스를 댄다. 플레이오프 라운드를 2개의 그룹으로 나눈다. '챔피언그룹'과 '넌챔피언그룹'이다. 챔피언그룹은 유럽 중위권 리그(스코틀랜드, 그리스, 체코 등)의 챔피언들이 속한다. 넌챔피언그룹은 유럽 상위리그(EPL, 프리메라리가, 세리에A 등)의 상위권팀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룹 내 팀들간의 경기를 통해 본선 32강으로 진출한다.
이전까지는 넌챔피언그룹에 속했던 팀들도 챔피언그룹의 팀들과 만날 수 있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넌챔피언그룹 팀들이 앞섰다. 손쉽게 본선 32강에 나설 수 있었다. 플라티니 회장의 개편안 때문에 넌챔피언그룹 팀의 본선 진출길은 더욱 어려워졌다.
실제로 2009~2010시즌부터 이런 일이 발생했다. 포르투갈의 명문 스포르팅이 이탈리아의 강호 피오렌티나와 만났다. 양 팀은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결국 원정 다득점 우선으로 피오렌티나가 올라갔다. 2010~2011시즌에는 스페인의 강호 세비야가 포르투갈의 브라가에게 지며 본선에 오르지 못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2011~2012시즌에는 바이에른 뮌헨이 플레이오프에서 취리히와 만나 고전 끝에 본선 32강에 올랐다.
또 다른 부작용도 있었다. 본선 32강 조별리그의 질적 저하였다. 2009~2010시즌에 마카비 하이파(이스라엘)와 아포엘(키프러스) 등이 등장했다. 이들을 필두로 매년 클루지(루마니아) 질리나(슬로바키아) 노르셀란드(덴마크) 등이 본선에 나섰다. 이들은 승점자판기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10~2011시즌 질리나의 경우 본선 32강 6경기에서 6전 전패, 3득점에 19실점을 했다. 심지어 올림피크 마르세유와의 홈경기에서는 0대7로 대패했다. 또 2011~2012시즌에는 디나모 자그레브(크로아티아)가 올림피크 리옹과의 경기에서 1대7로 대패했다. 같은 시즌 겡크(벨기에) 역시 발렌시아에게 0대7로 대패했다. 전력차로 인한 경기 수준의 하락이 뚜렷했다.
이런 사태가 계속 되자 상위리그를 중심으로 반발의 기운이 일었다. UCL의 질적 저하는 결국 소비자들(팬들과 시청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플라티니 회장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일부 상위권팀들의 UCL 독점보다는 더욱 많은 나라의 팀들을 참가시켜 UCL의 외연을 넓히려는 계획이다. 플라티니 회장은 "향후 UCL을 본선 32강이 아닌 64강으로 확장하겠다"는 꿈을 밝히고 있다. 마찰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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