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이 오류초 재학 시절이던 2000년 4월 4일 서울시 교육감배 대회에 출전해 드리블하고 있다. 작은 체구에도 발밑에서 볼을 컨트롤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사진제공=김보경 부모님
또래들 보다 머리 하나가 작았다. 친구들은 자고 일어나면 키가 컸다. 소년의 자신감은 갈수록 떨어졌다. 팀에서도 후보로 밀렸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설움이었다. 부모는 몸에 좋다는 약을 모두 찾아서 아들에게 먹였다. 그래도 제자리걸음이었다. 모두가 '큰 선수가 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허정무 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김보경이 오류초 재학 시절이던 2001년 9월 28일 열린 서울특별시 남녀종별축구선수권 신정초와의 경기에서 패스를 시도하고 있다. 사진제공=김보경 부모님
모두가 '노'라고 했던 꼬마
김보경은 허 부회장이 차세대 유망주 육성을 위해 설립한 용인시축구센터(이하 용인FC) 산하 원삼중-신갈고 출신이다. 용인FC의 1기생이다. 입단 초에는 평가가 달갑지 않았다. 키가 너무 작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만 해도 김보경은 1m60도 되지 않는 '꼬마'였다. 이범영(부산) 이승렬(전북) 등 동기생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해 보였다. 용인FC 코치들이 "너무 작아서 안될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허 부회장은 오히려 김보경을 중용하라고 지시했다. "어느 포지션을 맡겨도 좋을 만큼 기본기와 개인기가 좋은 선수였다. 키는 언젠가 큰다.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허 감독의 믿음은 곧 실전에서 드러났다. "경남 밀성중 3학년과 원삼중 1학년 간 연습경기에 내보낸 적이 있다. 승패를 떠나 선수들의 실력을 테스트해보고자 한 무대였다. 그런데 김보경이 머리 하나 더 큰 선수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더라. 죽기살기로 몸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놈 되겠구나'고 생각했다."
용인FC에서 실력을 키운 김보경은 고교 시절부터 무섭게 성장했다. 신갈고를 거쳐 홍익대로 진학하면서 수많은 우승컵을 안았다. 뛰어난 왼발 킥과 볼 키핑력이 일품이었다. 곧 탄탄대로가 펼쳐졌다. 19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을 거쳐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까지 승승장구 했다. 2010년 1월 9일 잠비아와의 평가전에서 꿈에 그리던 A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김보경이 오류초 재학 시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를 방문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김보경 부모님
남아공-브라질 '데자뷰'
홍명보 A대표팀 감독은 지난 8일 브라질월드컵 본선 최종명단을 발표한 뒤 홍역을 치렀다. 대표 선수 선발을 놓고 숱한 말들이 오갔다. 본선을 향한 고뇌는 왜곡됐다. 허 부회장 역시 4년 전 똑같은 상황을 겪었다. 2010년 6월 1일 오스트리아 노이슈티프트에서 가진 남아공월드컵 최종명단 발표에서 김보경을 호명했다. 이근호 구자철 등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종명단에 깜짝 합류한 김보경을 두고 의심의 눈초리가 빗발쳤다. 허 감독은 당시 "밖에서 보면 어떨지 몰라도, 함께 훈련을 해보니 뛰어난 선수였다.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선수"라고 당위성을 설명했다. 4년이 지난 지금의 생각은 어떨까. "지금도 똑같은 상황이라면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다."
◇김보경이 오류초 재학 시절 잉글랜드-독일 국기 색깔로 꾸며진 화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김보경 부모님
김보경은 2010년 동아시안컵 일본전에서 3대1 승리를 이끌면서 허 부회장의 눈도장을 받았다. 상대를 순간적으로 무력화 시키는 개인기가 빛났다. 무엇보다 자신의 위치에 연연하지 않고 성실하게 임하는 태도가 허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다. 허 감독은 "(김)보경이는 원삼중 시절부터 왜소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철저하게 자신을 단련했다. 훈련이나 경기에 앞서 웨이트트레이닝을 거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남아공월드컵 때를 떠올리면서 "본선에서 기회가 됐다면 한 번쯤 써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회를 주지 못했다. 본인 입장에선 상심했을 법 한데도 대표 소집 첫 날부터 16강전을 마치는 순간까지 누구보다 성실하게 생활했다. 말수는 적었지만, 알찬 선수였다. 내가 먼저 다가가 장난을 걸 정도였다"고 미소를 지었다.
◇김보경(중간줄 왼쪽 세 번째)이 신갈고 재학 시절 한국고등축구연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신갈고 선수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교 동창인 이범영(맨앞줄 왼쪽 첫 번째) 오재석(맨앞줄 왼쪽 두 번째) 이승렬(중간줄 오른쪽 네 번째)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사진제공=김보경 부모님
유쾌한 도전, 스스로 헤쳐 나아가라
4년이 흘렀다. 대표팀 막내 김보경은 중고참으로 성장했다. 경험이 훌쩍 쌓였다. J-리그 세레소 오사카를 거쳐 카디프시티(잉글랜드)에 입단해 챔피언십(2부리그)과 프리미어리그를 모두 경험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동메달 신화의 밑거름이 됐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은 김보경이 또 한 번 빛날 수 있는 무대다.
허 부회장은 '쓴소리'의 대가다.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는 그의 철칙은 때로는 비수가 되기도 한다. 제자도 예외가 없다. "4년 전에는 막내였지만, 이제는 중고참이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생존 못한다." 큰 물에서 놀면서 가능성을 증명했다. '제2의 박지성'이라는 영예로운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과거일 뿐이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은 김보경이 그동안 쌓아올린 축구인생의 총집합체가 될 것이다. 허 부회장은 "월드컵은 최고의 무대다. 하지만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면 무너지는 무대이기도 하다"면서 "김보경이 보여준 그간의 노력과 재능, 경험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스스로 틀을 깨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회초리 같은 말투와 달리 애정이 담뿍 담긴 표정이었다. 한 마디를 더 추가했다. "도전하는 이는 두려워 하지 않는다."
더 이상 어린 선수가 아니다. 태극마크를 짊어진 김보경에게 브라질월드컵은 '유쾌한 도전'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