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이 됐다.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튀니지와의 평가전. 무기력한 0-1 패배에 출정식은 초상집 분위기가 됐다. 4년 전 박지성의 '산책 세레머니'에 출정식을 망친 일본이 네덜란드, 덴마크, 카메룬과의 경쟁에서 16강에 진출한 사례도 있지만, 여간 찜찜한 게 아니다. 패배라는 결과보다는 내실을 찾기 어려웠던 내용이 걸린다. 특정 선수, 특정 진영을 꼬집기도 어려운, 총체적인 문제였다.
홍명보 감독이 선발 과정에서 제시한 '원칙'의 차원을 넘어섰다. 논란의 중심에 놓인 선수들 외, 마땅히 뽑힐 줄로 예상했던 이들의 몸 상태가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특히 유럽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만큼 우려도 크다. 박주영(3경기 출장)을 비롯해 9개월 동안 경기를 턱없이 부족하게 뛴 자원들은 감각에 이상이 있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몸 관리를 잘했다고 해도 한계를 피할 순 없었다. 팀 내 에이스로 혹사를 당한 탓에 시즌 막판을 놓쳤거나 부상, 개인 기복, 감독 교체 등의 문제로 부침을 겪은 이들이 상당수다. 이번 시즌 본인의 최고 활약을 보인 선수는커녕 레귤러 멤버로 시즌 내내 팀 전력에 보탬이 된 선수도 극히 적다.
구자철은 "체력적으로 더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들쑥날쑥한 출장에 경기력을 꾸준히 유지하지 못한 선수가 대부분. 평소 감각을 찾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릴 수 있다. 이번 튀니지전에서는 볼을 잡기 전 상대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했고, 판단 속도가 늦어져 상대 수비와 부딪히는 일이 빈번했다. 선수 개개인이 할당하는 구역 자체가 좁은 데다 공간을 커버하는 속도까지 떨어졌고, 패스가 유기적으로 흐르 만한 공간 활용도 부족했다. 전체적인 간격 유지 및 라인 컨트롤에 아쉬움이 남은 터라 조직력이나 전술은 논하기조차 어렵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자신감 붙은 플레이가 나오기도 어려웠다.
수비 호흡의 엇박자도 나온다. 기성용-한국영 라인이 조금 더 방해하지 못했고(세컨볼 싸움을 그대로 풀어놓는 등 결정적 상황에서 수비적 문제를 드러냈다), 결과론적으로 충돌 과정에서 볼이 뒤로 흐른 불운도 겹치긴 했다. 다만 중앙 수비가 둘 모두 진영을 지킨 상황에서 제대로 된 분담이 이뤄지지 않은 게 뼈아팠다. 홍정호는 무리하게 덤비기보다 자리를 잡고 볼의 진행 방향을 체크해야 했고, 김영권은 이미 오프사이드 트랩에 빠진 상대를 의식하며 뒷공간 커버에 들어가야 했던 장면. 이런 형태의 수비가 충분히 가능한 선수들이었던 터라 더 아쉬웠다. 개인이 정면으로 드리블을 치며 들어오는 장면은 골을 내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저조한 몸 상태와 호흡 문제를 다독일 리더도 부재했다. 81년생 곽태휘를 빼면 85년생이 최고참, 실제 필드 곳곳을 누빌 주역은 대부분 88~89년생이다. 젊은 패기로 시너지를 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꼬여가는 경기를 풀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2002 월드컵 폴란드전 당시 황선홍의 선제골이 터지기 전, 홍명보의 중거리 슈팅 한 방이 얼었던 분위기를 녹였다. 2010 월드컵 당시 이운재, 김남일, 안정환, 이동국 등은 실전은 거의 뛰지 못했어도 경기장 내외에서 팀의 중심을 잡아줬다. 자신감과 자만심의 경계에 선 팀의 긴장감을 조여줄 세대가 현 홍명보호에는 없다. 김남일이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라고 지적한 것도, 지난해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 여부를 논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러시아전을 정확히 3주 앞둔 평가전이었다. 미국 마이애미를 거쳐 브라질로 입성하는 일정에서 남은 경기는 내달 10일(한국시각) 가나전뿐이다. 정녕 급한 건 제대로 된 몸 상태, 평소의 감각 찾기다. 홍 감독은 특정 선수에 대해 "계속 경기를 뛰면 좋아질 것으로 본다."고 했지만, 이제는 뛸 경기도 없다. 모든 잠재력을 끌어내 120%을 발휘해야 할 상황에 7~80%밖에 하지 못하고 돌아올 수도 있음을 보여준 게 이번 출정식이었다. 조금 더 냉정하고 치열한 준비가 절실해 보인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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