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부일체]20. 황석호의 부상 날려버린 박순태 감독의 한마디

기사입력 2014-06-10 07:22


2010년 7월 경남 남해에서 열린 전국대학축구대회에서 대구대 소속의 황석호가 중거리슈팅을 날리고 있다. 사진제공=대학축구연맹

지난 3월. 경북 경산 진량의 한 식당. 박순태 대구대 감독과 황석호(산프레체 히로시마)가 마주 앉았다. 박 감독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평소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쓴 소리를 했다. 몸상태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의 밑에 있을 때는 좀처럼 다치지 않던 황석호였다. 프로팀에 들어가더니 부상이 잦았다.

그리스전을 앞두고 소집됐지만 결국 부상으로 낙마했다. 황석호가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박 감독이 자리를 마련했다. 박 감독은 입을 열었다.

"석호야. 왜 갑자기 부상이 많아졌다고 생각하니? 내 생각에는 너의 잘못이 큰 것 같은데"

황석호는 말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박 감독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말을 멈추었다. 황석호를 처음 보던 때가 떠올랐다.

강철맨

박 감독은 2007년 황석호가 운호고 3학년 때 처음 만났다. 대구대를 맡고 있던 박 감독은 윙백이 필요했다. 고교 유망주들을 보러 다녔다. 마땅한 선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대구대를 졸업한 한 선수의 부모님으로부터 운호고 3학년 수비수가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연습경기를 하나 잡았다. 서운대와의 경기였다. 황석호는 중앙수비수로 나왔다. 박 감독의 입에서 "저 놈 봐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당시만해도 중앙수비 실력은 보통이었다. 하지만 박 감독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 하나 있었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상대의 크로스를 빠르게 낚아챘다. 플레이에 자신감이 넘쳤다. '잘 키우면 해볼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2008년 대구대로 데려왔다. 박 감독은 황석호의 훈련강도를 높였다.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다. 대구대의 웨이트 트레이닝은 강도가 셌다. 황석호는 불평불만없이 소화해냈다. 팀 내에서도 알아주는 '강철맨'이 됐다. 근력이 생기니 스피드가 붙었다. 1년간 윙백으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2010년 열린 제11회 전국대학축구대회에서 황석호는 대구대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준우승 이후 찍은 단체 사진. 두번째줄 오른쪽에서 네번째가 황석호. 사진제공=대학축구연맹
멀티플레이어


2학년이 된 황석호에게 새로운 숙제가 하나 날아들었다. 중앙수비수였다. 대구대의 주전 중앙수비수가 다쳤다. 대체자원이 필요했다. 황석호는 고교 시절 중앙수비 경험이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1년간 윙백만 소화했다. 박 감독은 고민에 빠졌다. 중앙수비수치고는 그리 큰 키(1m82)는 아니었다. 그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황석호는 상당히 힘들어했다. 박 감독도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멀티플레이어라는 것이, 감독 입장에서는 좋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포지션을 옮길 때마다 몇배의 노력을 해야만 했다. 박 감독은 황석호가 힘들어할 때마다 다독였다. "석호야. 지금은 힘들지만 멀티 능력만 갖추면 너에게 큰 힘이 될 날이 분명히 올거야. 날 믿고 따라와주렴." 황석호는 그 때마다 "예"라며 박 감독을 따랐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3학년이 끝나기 전 황석호는 대학무대를 대표하는 전천후 수비수가 되어 있었다.


박순태 대구대 감독. 사진제공=박순태 감독
행운 그리고 불운

황석호가 3학년 때인 2010년 말. 박 감독은 '87학번 축구인 모임'에서 홍명보 감독을 만났다. 87학번의 축구인들이 모여 친분도 나누고 봉사도 하는 소모임이었다. 홍 감독 외에도 황선홍 포항 감독 등 수많은 지도자들이 함께 했다. 박 감독은 당시 올림픽대표팀 멤버를 찾던 홍 감독에게 자신의 제자를 추천했다. 망설이기도 했다. 괜히 추천했다가 제대로 된 기량을 보이지 못한다면 친구로서 홍 감독에게 미안할 일이었다. 추천을 받은 홍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보겠다고 했다.

이듬해 3월 홍 감독은 선수 발굴차 경남 남해에서 열린 춘계대학축구연맹전을 찾았다. 그 때 박 감독의 추천을 기억해냈다. 바로 대구대의 경기를 봤다. 2~3경기 지켜본 뒤 서울로 올라갔다. 얼마되지 않아 박 감독의 전화기가 울렸다. 홍 감독이었다. 대학 선수들 테스트를 할 터이니 황석호를 올려보내달라는 부탁이었다. 황석호는 태극마크와 그렇게 연을 맺었다.

하지만 황석호는 올림픽대표팀 경기에서 제대로 뛰지 못했다. 학교 측에서는 뛰지도 못할 바에야 뭐하러 보내냐며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냈다. 황석호도 실망만 하고 내려왔다. 그 때마다 박 감독은 학교에 "조금만 기다려달라. 분명히 좋은 소식이 올 것이다"고 말했다. 황석호에게도 "너 자신을 믿고 운동에만 매진해라.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다.

2012년 대구대를 졸업한 황석호는 산프레체 히로시마에 입단했다. 산프레체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올림픽대표팀에서의 황석호는 주전이 아니었다. 황석호가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럴 때마다 박 감독은 황석호를 다독였다. 행운이 따랐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홍명보호의 주전 수비수인 홍정호와 장현수가 다쳤다. 황석호가 대신 발탁됐다. 황석호는 한국의 전 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동메달 획득에 크게 힘을 보탰다.


박순태 감독이 대구대 선수들과 태백산을 찾아 기념촬영을 가졌다. 사진제공=박순태 감독
석호야 자부심을 가져라

"감독님. 아무래도 제가 몸관리를 소홀히 한 것 같아요."

제자의 말에 마음이 찡했다. 스승은 말을 이었다. "그래. 석호야. 너 대학교 시절 생각해라. 그 때는 최대 산소섭취량을 70~80%까지 할 수 있도록 몸을 만들어놓고 있었어. 그래서 부상도 없었잖아. 그런데 일본에서 1년밖에 안됐는데 부상이 많아졌다. 그 몸을 유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잖아. 일본은 운동량이 적은 것으로 유명하잖아. 그렇기 때문에 너는 개인 운동을 통해서 몸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는 수 밖에 없어." 황석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에서 다시 스승과 제자는 개인 훈련 계획을 손봤다.

두달이 지났다. 5월 8일 박 감독은 TV앞에 앉았다. 홍 감독이 나와있었다.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명을 발표했다. 홍 감독의 입에서 "수비수 황석호"라는 말이 나왔다. 이어 "황석호는 멀티 능력이 있다"고 했다. 박 감독은 스마트폰 메신저를 켰다. 황석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석호야 이제부터 시작이야. 집중해야해. 무엇에 집중해야하는지는 말안해도 알겠지. 월드컵은 세계의 큰 축제다. 그 축제에 참여하는 큰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뛰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한국을 위해서 그리고 대구대를 위해서 또 너 자신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라.'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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