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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만이다.
1971년 당시 최연소 국가대표(청룡)로 발탁된 김 감독의 북한에 대한 첫 인상은 '놀라움'이었다.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김 감독은 "북한은 당시 체코와 헝가리 등 사회주의국가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그렇다보니 한국 축구보다 유럽 축구를 더 빨리 흡수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일명 '바나나킥'이라는 슈팅을 잘하더라. 기술로는 한국보다 앞서 있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양팀 선수들 모두 페어플레이를 했다. 건들면 곧바로 터질듯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김 감독은 "0-0에서 돌입한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경기가 끝나자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안도의 한숨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규정에는 승부차기로 순위를 결정하는 규정이 없었다. 남북의 공동 금메달이었다. 한 차례 고비가 더 남아있었다. 시상식이었다.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김 감독은 "나는 북한의 주장이었던 김종민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양보했다. 그런데 내가 올라갈 차례에 보니 종민이가 시상대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더라. 나는 남은 공간에 겨우 올라섰다"며 웃었다. 이 때 북한이 귀여운(?) 도발을 했다. 뒷쪽에 서 있던 북한의 골키퍼가 김 감독을 밀쳤다. 김 감독은 시상대에서 떨어졌다. 김 감독은 "북한 골키퍼는 공동우승이지만, 북한 주장만 혼자 서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했다. 화가 날 법도 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북한의 당시 사정을 아니깐 그냥 넘길 수 있었다. 안그래도 북한 선수들은 대회 진행요원들에게 혼이 났다."
시상이 끝난 뒤 하이라이트는 남북 주장의 사진촬영이었다. 취재진의 사진촬영 요청에 김 감독은 북한의 주장 김종민에게 이렇게 얘기했단다. "우리의 상황이 좀 그렇지만, 지금은 아시아를 떠나 전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그것을 생각하자." 그러면서 김 감독이 과감히 어깨동무를 시도했다. 순간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아직도 축구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김 감독의 용기에 그라운드의 냉랭함은 눈녹듯 녹아내렸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