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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축구선수 임선주, 지소연, 조소현, 심서연(왼쪽부터)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4.1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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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축구는 나날이 성장세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투혼의 동메달, 12년 만의 여자월드컵 본선행의 쾌거가 그라운드를 수놓고 있다. 그러나 소녀들의 눈물샘은 마를 날이 없다. 텅 빈 그라운드를 뛰는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연이은 호성적에 들끓는 관심은 금새 식기 마련이다. 무덤덤해지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상처다. 때문에 소녀들은 기를 쓴다. 언젠가는 남자 축구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뛸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여건이 바뀌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다. 20일 인천축구전용구장서 펼쳐진 2014년 IBK기업은행 WK-리그 챔피언결정 2차전은 한국 여자 축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치부였다. 텅 빈 관중석과 보기 민망할 정도로 덧댄 그라운드에서 기를 쓰고 뛰는 소녀들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한국 여자 축구 여왕을 가리는 자리 치고는 너무 초라했다. 모든 게 어수선 했다. 경기장 출입구에선 급하게 우승팀 단상을 짜맞추는 망치질이 한창이었다. 경기장 출입구에 서 있는 안전요원은 지나다니는 이들을 무심히 쳐다볼 뿐, 본연의 임무는 망각한 듯 했다. 경기를 앞둔 그라운드 상태는 가관이었다. 전체 면적의 50%가 '땜질' 되어 있었다. 잔칫상은 요란했지만,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정체불명의 이벤트만 어지럽게 늘어놓았다. 하루 일과 정리가 한창인 오후 4시에 열린 경기, 관중석은 고양 대교, 인천 현대제철 응원단 만이 덩그러니 자리를 잡았을 뿐이다. 경기도 관계자 격려 탓에 당초 예상보다 7분이나 지연된 채 치러지는 등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장면만 이어졌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린 뒤 터진 폭죽 탓에 희뿌연 안개로 전반 15분이 되서야 그라운드가 보일 정도였다. 경기 뒤 급하게 치러진 시상식에서도 어수선한 분위기는 계속됐다. 시상을 위해 그라운드로 내려온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제대로 정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10여분 간 멀뚱히 그라운드에 서 있는 상황도 벌어졌다.
투혼의 동메달을 따낸 여자 선수들의 바람은 하나, 한국 여자축구가 남자 대표팀이 받는 스포트라이트의 10%라도 받는 것이다. 잉글랜드 여자 슈퍼리그(WSL)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챔피언결정 2차전을 관전했던 지소연은 "왜 월요일에만 경기를 해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주말에 남자 축구가 있어도 우리가 앞선 시간에 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대제철 미드필더로 WK-리그 우승을 일군 조소현도 "여자 축구를 아끼고 매일 보러 와주는 팬들도 존재한다. 그 팬들이 보다 편한 여건에서 보게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드러냈다.
WK-리그의 반면교사로 항상 제시되는 게 일본 나데시코리그 고베 아이낙이다. 재일교포 출신 문홍선 회장의 아이낙홀딩스를 모기업으로 둔 고베는 2011년 독일 여자월드컵에서 일본 대표팀이 우승한 뒤 폭발적 성장세를 기록, 경기당 2만명에 가까운 관중을 모으는 인기구단으로 자리 잡았다. 고베에서 3년 간 활약했던 지소연은 "고베도 처음부터 2만명이나 되는 관중이 들어온 게 아니다. 처음엔 200~300명 앞에 서서 경기를 했다"며 "선수들이 모두 길거리, 지하철역에 나서서 '우리 경기를 보러 와달라'고 일일이 전단지를 돌렸다. 선수들 모두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팬들과 스킨십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 관중 수가 계속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공짜라는 인식도 바꿔야 한다. 3000원이든 4000원이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조소현은 "커피 한 잔 마실 돈만 내면 여자축구를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여자축구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애써 잡은 좋은 기회를 헛발질로 날려 보낸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다.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WK-리그,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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