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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실력이 부족해요. 의지와 배고픔으로 승부할 겁니다."
이렇게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는 2007년 번외 지명으로 인천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에 데뷔한 뒤 '될 성 부른 떡잎'평가만 따라다닐 뿐, 잠재력이 터지지 않았다. 2010년 음주폭행 구설수에 오른 뒤 임의탈퇴, 제주 이적 등 굴곡을 겪었다. 새출발을 다짐했지만, 제주에서도 제자리 걸음이었다. 지난 3월 황선홍 포항 감독이 강수일을 임대 영입하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반신반의 했다. 그러나 '몸값을 깎아서라도 포항에서 재기해보고 싶다'는 다짐을 믿었다. 강수일은 올 시즌 리그 29경기서 6골-3도움을 올려 프로 입단 8년 만에 개인 최고 기록을 썼다. 덕분에 그렇게 꿈꾸던 태극마크도 생애 처음으로 달았다.
남들과 달랐다. 그래서 비뚤어졌다. 유년기는 썩 유쾌하지 못했다. 아프리카계 혈통 미국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랐다. 아버지와 닮은 피부색은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학창시절엔 '마이콜(만화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다문화 가수 지망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남들의 눈길이 싫었다. 쳐다보기만 해도 주먹질을 했다. 축구도 인근 초등학교에 싸우러 갔다가 그 학교 축구부 감독의 눈에 들어 시작했다. 관심과 차별의 대상이었지만,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 식당의 '주방 아줌마', 청소원 등 궂은 일을 마다않고 자신을 뒷바라지 한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그래야 했다. 편견을 딛고 기량을 갈고 닦아 19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까지 나섰던 수비수 장대일(은퇴)에 이은 오랜만의 '다문화 태극전사'다. 평소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의 롤모델이 되고자 '태극전사'를 목표로 뛰었던 강수일의 가슴을 흔들 만한 '사건'이다. 그는 "이이들이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내 모습을 볼텐데 편견없는 세상에서 미래를 짊어질 선수들로 성장하길 바란다. 나도 모범이 되겠다"고 전했다.
'해피엔딩'을 꿈꾼다. 강수일은 "대표팀에는 좋은 공격수들이 많다. 기량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적극적으로 다가선다면 자신있다"고 했다.
서귀포=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