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은 참 많이 달랐다. 2005년 1월 스무살 박주영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미풍이었던 그의 바람은 태풍이 돼 한국 축구를 휘감았다. 연결고리가 된 무대가 2005년 카타르 8개국 초청 청소년대회였다. 4경기에서 9골-1도움을 기록하는 경이로운 역사를 썼다. 특히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2골을 몰아넣으며 3대0 완승을 주도했다. 일본에 3골차 이상 승리는 35년 만의 일이었다. 추억의 인물이 된 일본의 '괴물 스트라이커' 히라야마도 박주영의 기세에 밀려 쩔쩔 맸다. 한국은 우승했고, 박주영은 득점왕과 MVP를 휩쓸었다. 한국 축구 100년사에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탄생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한 달 뒤 또 다른 역사가 탄생했다. 2005년 2월 28일, 고려대 재학 중이던 그는 FC서울에 전격 입단했다. 스포츠조선 1, 2, 3면을 장식할 정도로 그의 프로행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괴물 신인'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였다. 박주영의 첫 공개훈련은 서울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열렸다. 구름 취재진이 몰렸고, 팬들도 설렘으로 가득했다. 물론 시기하는 눈빛도 있었다. 프로무대에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까에 의문부호를 달았다.
그렇게 K리그가 개막됐고, 그의 이름 석자는 무늬가 아니었다. 첫 해 30경기에 출전, 18골-4도움을 기록하며 최고의 킬러로 등극했다. 신인상은 경쟁 상대가 없었다. 베스트 11 공격 부문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성적 뿐이 아니다. 2004년 연고지를 옮긴 팀의 수도 서울 정착에 기폭제가 됐다. 서울은 당시 K리그 단일 시즌 최다 관중(45만8605명)을 새롭게 수립했다. K리그도 르네상스를 맞았다. 박주영의 원정경기에도 팬들이 몰렸다. 그 해 12월 한 스포츠마케팅 전문조사기관에선 '박주영 선수 올해 경제적 파급효과'라는 보고서가 발표될 정도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박주영은 직접경제효과 106억원 파급효과 613억원 FC서울 광고효과 1016억원 등 총 1755억원의 효과를 유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주영 덕분에 늘어난 관중은 경기당 1만명으로 추산됐다.
2015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2008년 8월 박주영은 유럽 진출에 성공했다. AS모나코로 이적했다. 프랑스 무대에서도 빛났다. 103경기에 출전, 26골-9도움을 기록했다. 러브콜이 쇄도했다. 프랑스의 명문 릴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에서 동시에 영입 제의가 왔다. 갈림길에 선 그는 릴과의 계약 직전 빅리그의 손을 잡았다. 2011년 아스널로 이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겉돌았다. 설 곳이 없었다. 셀타비고(스페인), 왓포드(잉글랜드 2부 리그)의 임대를 거쳐 지난해 6월 자유계약 신분이 됐다. 10월 사우디아라비아 알 샤밥으로 다시 이적했지만 지난달 결별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파란만장했다. 환희와 아픔, 갈등이 교차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16강행 프리킥 축포를 터트렸다.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일본과의 3-4위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작렬시켰다. 한국 축구에 사상 첫 동메달을 선물했다. 그러나 논란도 많았다. 올림픽 동메달로 일단락됐지만 병역 연기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지난해 브라질월드컵도 악몽이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의리 논란'으로 네티즌의 표적이 됐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지휘한 2015년 호주아시안컵에서는 최종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흐름이 또 바뀌었다. 2015년 3월 10일, 10년 전의 세상이 다시 열렸다. 박주영이 친정팀인 서울의 품에 안겼다. 그의 K리그 복귀도 엄청난 화제를 뿌리고 있다.
스무살의 박주영은 서른살이 됐다. 그라운드에는 선배보다 후배가 더 많다. 선수로서 걸어온 길보다 가야할 길이 많지 않다. 은퇴 뒤 제2의 인생도 설계해야 할 때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그러나 시시각각 변신하는 것이 여론이다. 우려를 되돌리는 것은 박주영의 몫이다. 기성용(스완지시티)이 'SNS 논란'을 기량으로 잠재운 것처럼 박주영도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
"실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박주영을 재영입한 최용수 서울 감독의 생각이다. 현실이 돼야 한다. 여론이 다시 그를 주목하고 있다. 박주영은 매순간 '명예회복'을 머리 속에 그려야 한다. 10년 전의 박주영으로 돌아가야 한다. '축구천재'가 K리그에서 부활하면 한국 축구에도 축복이다. 다시 숨을 쉬는 박주영의 시계가 순풍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포츠 2팀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