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월드컵]'월드컵 전문'정해성 단장이 말하는 16강 비하인드스토리

최종수정 2015-06-23 06:47

정해성 단장(왼쪽).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지난 18일 오타와 랜스다운스타디움, 대한민국 라커룸은 물바다가 됐다. 캐나다여자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스페인전에서 극적인 역전승(2대1 승)과 함께, 사상 첫 16강을 확정한 직후다. 선수들을 향해 '물 공격'을 시작한 건 정해성 캐나다여자월드컵 단장이었다. "야! 지금 우리가 얼마나 큰일을 해냈는데, PGA 우승보다 더 큰일을 해냈다고!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세리머니를 할래!" 정 단장의 선제 공격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여자선수들의 역습이 시작됐다. 마침 들어오는 윤덕여 감독을 향해 선수들은 붉은색 이온 음료를 뿌려댔다. 정 단장은 "첫 16강, 이런 무대가 처음이라 끓어오르는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더라. 대한민국 여자축구 역사를 새로 쓴 날인데 내가 분위기를 좀 띄웠다"며 웃었다.

정 단장은 캐나다여자월드컵 출정식 이틀전 단장으로 임명됐다. 코치로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수석코치로 2010년 남아공월드컵 첫 원정을 경험한 경험한 정 단장은 자타공인 '월드컵 전문가'다. 윤 감독과는 전남 드래곤즈 시절 감독과 수석코치로 호흡을 맞췄다. 국제 경험과 소통 능력을 갖춘 정 단장은 12년만에 세계무대에 도전하는 여자월드컵 단장 적임자로 판단됐다. 그러나 코치, 감독으로 뼈가 굵었고, 이후 협회에서 경기위원장, 심판위원장을 맡아온 그에게 '단장' 직함은 생소했다. 호주아시안컵 단장을 맡은 유대우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게 SOS를 쳤다. 유 부회장은 정 단장에게 A4용지 2장에 '단장의 미션'을 정리해 건넸다. 정 단장은 "여자팀이라 할 수 없는 것도 꽤 많더라"고 했다. "치료실에 가서 선수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치료받을 때 닥터가 반드시 함께 있는지 확인하라고 했는데, 불편할까봐 치료실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며 웃었다.

지난달 22일 미국 뉴저지 훈련캠프에 합류한 정 단장은 미국과의 평가전 여자선수들의 투혼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절친인 프로야구 김경문 NC감독에게 여자축구대표팀 응원 메시지를 직접 부탁했다. 5월 최다승 기록을 세운 승리의 기운을 선수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거친 남자선수들과 평생 함께해온 정 단장은 순수하고 투혼 있는 여자선수들과 한달간 동고동락하면서 여자축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우리 선수들이 정말 예쁘다"고 했다. 오타와에서 대한민국 여자축구가 첫 16강의 꿈을 이루던 날, 정 감독은 조대식 오타와 대사와 관중석에서 끌어안고 기쁨을 나눴다.

험난한 월드컵 현장에서 정 단장은 윤 감독과 격의없이 소통했다. 수석코치 시절 그러했듯, 감독을 존중하며, 단장으로서 그림자처럼 팀을 도왔다. 코스타리카전,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하며 비긴 날, 정 단장은 식사자리에서 선수들을 따뜻하게 다독였다. 프랑스와의 16강전 직전엔 선수들에게 2002년 한일월드컵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을 앞두고 다들 이탈리아의 승리를 예상했다. 토티, 피를로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상대로 똘똘 뭉쳤다. 송종국이 토티에게 태클을 걸었는데, 토티가 퇴장당했다. 자칫 송종국이 퇴장당할 수도 있었던 장면이다. '진인사대천명', 사람이 할 일을 다하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다. 우리는 도전자다. 세계최고의 팀을 상대로 퀄리티 높은 경기를 하는 것, 세계 축구팬들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다 보여주고 다 쏟아내고 오자." 경험에서 우러난 정 단장의 코멘트에는 강한 울림이 있었다.

정 단장은 첫 월드컵 무대에 나서지 못한 4명의 선수, 골키퍼 전민경, 윤영글, 수비수 송수란, 김혜영을 일일이 언급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5명의 선수가 단 1분도 뛰지 못했다. 김병지. 최은성, 현영민, 윤정환, 최성용이었다. 당시 내가 선수들의 몸을 풀어주고 내보내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 선수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3명 교체가 끝난 후 벤치로 돌아올 때 미안해서 '다음 경기엔 기회가 있을 거야' 위로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선생님, 우리는 정말 괜찮습니다'했던 친구들이다. 그 마음이 그렇게 짠하고 고마울 수가 없더라. 지금 그때 5명은 누구보다 잘됐다. 지도자도 하고, 선수로서도 롱런하고 있다. 그런 팀 정신과 강한 멘탈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여자선수들도 다 잘될 것"이라고 덕담했다.

정 단장은 여자월드컵 첫 16강을 이끌며 한국 축구의 '최초 기록' 3개를 보유하게 됐다. '월드컵 복장'이라는 말에 하하 웃었다.
몬트리올(캐나다)=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