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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벽'과 마주한 한-일 축구의 답은 '외국인 지도자'였다.
대회 직후 열린 슈틸리케 감독과 할릴호지치 감독의 기자회견이 상황을 대변한다. 슈틸리케 감독이 승자의 여유를 한껏 누렸다. "이번 대회를 통해 선수들과의 소통, 팀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보여줬다." 할릴호지치 감독의 기자회견은 흡사 청문회를 방불케 했다. 자신의 말을 두고 '변명'이라고 표현한 일부 언론을 두고 "분노심을 느낀다"고 표현하며 날을 세웠다.
지도자는 성적으로 말한다. 과정은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라운드에서 얻는 승리와 패배 만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동아시안컵이 한-일 축구의 현주소는 아니다. 두 팀 모두 전력의 근간인 유럽파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라이벌인 한-중-일에 북한까지 충돌하는 '자존심 싸움'이다. 때문에 결과의 무게를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7년 만에 우승에 골인한 한국, 지난 대회 우승팀에서 꼴찌로 전락한 일본 모두 여파가 큰 이유다.
동아시안컵에서 얻은 상반된 성적표는 향후 양 감독의 팀 운영에도 중대한 변수가 될 만하다. 날개를 단 슈틸리케 감독은 당분간 확고한 입지 속에 A대표팀을 이끌고 갈 전망이다. 그동안 선수 선발, 팀 운영 방식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다. 하지만 '성적'으로 결과를 내고 있는 그의 철학에 더 이상 이견을 달기가 쉽지 않다. 다가오는 9월 A매치 2연전 등 러시아월드컵 예선 준비 과정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의견은 보다 명확하게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가시밭길 앞에 섰다. J리그 팀들과 대립 속에서도 추진해 온 비 A매치 기간의 대표팀 합숙훈련과 이를 통한 일본 대표팀 체질 개선 목표가 '궤도 수정' 될 수도 있다. 일본축구협회, 언론과의 줄다리기도 불가피해졌다. 이런 상황이 할릴호지치 감독에게 처음은 아니다. 브라질월드컵 준비 과정에서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당시 할릴호지치 감독은 외부와의 대립을 되려 팀 결속의 촉매제로 활용하며 톡톡히 효과를 봤다. 그러나 알제리에서의 대립이 이미 본선행을 확정 지은 뒤 준비과정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일본은 월드컵 본선을 바라보는 팀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할릴호지치 감독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동아시안컵에서의 성적이 필요했다. 목표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입지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세계 무대로 발돋움 한 한-일 축구는 그동안 엎치락 뒤치락 선의의 경쟁관계를 이어왔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동반 16강행에 성공하며 아시아의 힘을 과시했다. 동아시안컵을 계기로 구도는 또 바뀌었다. 한국과 일본을 이끄는 두 지도자, 슈틸리케 감독과 할릴호지치 감독은 '러시아로 가는 길'의 종착점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