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축구전용경기장/ K리그 클래식/ 전남드래곤즈 vs 제주유나이티드/ 경기종료/ 전남승리/ 전남 김병지 헹가래?/ 사진 김지훈
인천축구전용경기장/ K리그 클래식/ 인천유나이티드 vs 전남드래곤즈/ 인천 간접 프리킥/ 전남 김병지/ 사진 이완복
광양축구전용경기장/ K리그 클래식/ 전남드래곤즈 vs 제주유나이티드/ 전남 김병지/ 700경기/ 이종호 득점/ 700경기 축하 세레머니/ 사진 이완복
'대한민국 레전드 골키퍼' 김병지(45)가 결국 전남 드래곤즈를 떠날 뜻을 밝혔다.
올시즌 말 전남과의 계약이 만료되는 김병지는 4일 전남 구단으로부터 재계약 의사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전남에서 3년간 최선을 다했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선수든 지도자든 지금껏 그래왔듯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박세연 전남 사장은 "12월말까지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현재로서는 결별로 가닥이 잡힌 모양새다. 지난 7월26일 제주전에서 700경기 최고령, 최다 출전의 새 역사를 쓴 직 후 갑자기 주전 기회가 사라졌다. 이후 재계약 협상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노상래 감독은 김병지의 잔류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요청했다. 전남 구단은 재계약을 망설였다. 김병지는 "친구인 노 감독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고 싶지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싶지도 않았다"는 말로 전남을 떠날 뜻을 밝혔다.
김병지는 1992년 울산 현대에 입단한 후 24시즌째 K리그 그라운드를 굳건히 지켜온 명실상부한 '레전드'다. 올시즌 경기력에서도'8경기 무실점', 27경기 30실점, 경기당 1.11골(실점)으로 밀리지 않았다. 고비때마다 리그 최고참의 가치가 빛났다. 5월 13일 FA컵 수원과의 32강전은 '병지삼촌'의 진가를 드러낸 결정판이었다. 극적인 역전 드라마의 중심에 섰다. 연장 후반 43분, 기막힌 하프라인 '택배 프리킥'으로 3대3 동점골의 시작점이 됐고, 승부차기에선 "삼촌이 꼭 1개는 막을게"라던 약속을 지키며 결국 4강까지 올라갔다. 지난 24시즌간 78.5㎏의 체중을 유지해왔다. 술, 담배를 일절 하지 않는다. 흔한 핑계, 흔한 징크스도 없다. 존재만으로 '롤모델'이자 '모범'이 되는 김병지는 후배들에게 프로선수가 자기 관리만 잘한다면 40대 중반까지 얼마든지 뛸 수 있다는 희망의 이정표가 됐다.
"나이가 너무 많잖아"라는 한마디로 김병지의 가치를 폄하하는 부분은 아쉽다. 순발력이 떨어졌을지언정 게임을 읽는 눈은 더 밝아졌다. 수비라인을 이끄는 리딩력, 노련미는 '달인'의 경지다. 1967년생 하석주 감독부터 1994년생 올림픽대표 이창민과 함께 볼을 찬 24시즌, 리그의 역사가 몸속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김병지의 700경기 직 후 스플릿의 명운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백업 골키퍼가 잇달아 기용됐다. 재계약 의사가 없는 구단이 무언의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남 구단은 이 루머를 강력 부인했다. 공교롭게도 리그 3위 전남은 이후 12경기 무승의 늪에 빠졌고, 상위 스플릿 티켓을 놓쳤고, 리그 9위로 시즌을 마쳤다.
물론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단을 비난할 수는 없다. 경영상의 이유 등 구단의 사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 레전드에 대한 예우나 소통 측면에서 부족했다. 구단과 선수가 미리 재계약 여부, 은퇴시기, 방법 등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면 어땠을까. K리그에서 24시즌을 뛴 베테랑 선수를 대하는 자세는 구단과 리그의 품격이다. 같은 시기, 차두리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빛내준 FC서울, 32세 염기훈과 시즌중 재계약한 수원 삼성, 36세 '대박이 아빠' 이동국에 대한 전북 현대의 존중 등은 '좋은 예'다.
12월 시즌 종료 후 김병지는 노 감독을 향해 "구단에 내 얘기는 절대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절친'인 노 감독이 자신의 일로 부담 갖지 않기를 원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를 몰라주는 구단을 향해 재계약을 '읍소'하고 싶지 않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이웃 일본의 J리그는 '노장 열풍'이 뜨겁다. 1967년생 미우라 가즈요시(48·요코하마)는 1986년 브라질 산투스 데뷔 이후 프로 30년차를 맞았다. 올시즌 개막전에서 골을 터뜨리며 만 48세40일, 전세계 최고령 프로 골 기록도 세웠다. 미우라와 일본 대표팀 투톱으로 활약했던 나카야마 마사시(48)도 은퇴 3년만에 복귀했다. 전성기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일본 언론과 팬들은 이들의 존재 자체에 열광한다.
국내 타 종목에서도 '레전드'에 대한 예우는 남다르다. 삼성 라이온즈는 지난달 말 FA 이승엽과 계약기간 2년, 계약금 16억원, 연봉 10억(총액 36억원)에 합의했다. '불혹의 국민타자' 이승엽의 가치를 인정했다. 남자탁구대표팀의 '최고참' 주세혁(삼성생명), 최근 아이 둘을 낳고 돌아와 대한항공의 우승을 이끈 '깎신' 김경아 역시 실력파 레전드로 칭송받고 있다.
서른살, 마흔살에도, 쉰살에도 꿈은 계속된다. 아직도 달리고 싶은 마흔다섯, 현역 골키퍼의 꿈을 주저앉히는 리그는 잔인하다. 스타들이 떠나는 K리그, 남도의 끝 '축구도시' 광양에서 김병지같은 '레전드'가 빚어낸 수많은 이슈와 역사성, 풍성한 스토리의 힘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불과 2년전 강등의 최전선에서 '필사즉생'으로 싸운 불혹의 레전드를 '토사구팽'하는 모습은 씁쓸하다. '스포츠 영웅' '레전드'를 지키지 못하는 리그 문화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