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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게 세월이지만 을미년도 어느덧 끝자락이다. 이틀 후면 2015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97년 J리그 벨마레 이적으로 얻은 수익금 5000만원을 출연, '선수 홍명보'가 설립한 '홍명보장학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4강 신화를 거쳐 더 높게 비상했다. 자선경기는 햇수로 13년간 대한민국을 위해 뛴 '국가대표 홍명보'가 전 국민의 사랑을 환원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나 걸어온 길은 쉽지 않았다. 매년 걱정이 앞선다. 홍명보장학재단을 이끌고 있는 홍명보 이사장은 "앞으로 자선경기를 얼마나 계속할 지 모르지만…"이란 말을 입에 달고 있다. 하지만 그 끈을 놓을 수도, 놓고 싶지도 않다. 그는 "인생에서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일"이란 말도 잊지 않는다. '13년간의 선행'이 맺은 열매는 기부금만 이미 20억원을 훌쩍 넘었다.
물론 성적에 따른 비판은 어느 누구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비난을 위한 비난은 건강하지 못한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대한민국에서 '영웅'으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곱씹게 할 뿐이다.
2010년 남아공에서 사상 첫 월드컵을 제패한 스페인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16강 진출 실패의 수모를 당했다. 그 충격은 월드컵 16강 진출을 목표로 하는 한국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스페인의 대응은 달랐다. 60세가 넘은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65)을 지켰다. 델 보스케 감독은 올해 세대교체를 통해 팀을 유로 2016 본선에 올려 놓은 것만으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유로 2016 본선을 끝으로 대표팀을 떠날 뜻을 밝혔지만, 스페인축구협회는 재계약을 추진 중이다. 한국에서 스페인의 축구 환경을 꿈꾸는 것은 사치지만 적어도 홍 감독을 놓고 조롱의 대상으로 추락시키는 것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 감독은 내년이면 만으로 47세다. 여전히 젊다. 지나온 길보다 가야할 길이 더 많이 남았다. 2016년 1월 1일, 그는 새 출발을 한다. 중국 슈퍼리그 항저우 뤼청(그린타운) 사령탑으로 그라운드에 복귀한다.
홍 감독은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하다. 그는 항저우 감독직을 수락한 후 "많은 분들이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동안 명예를 위해 축구를 하진 않았다. 과연 축구를 하며 내가 얼마나 많은 명예를 가졌나 싶다. 이번 일도 잘하고 좋아하는 축구를 위해 선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브라질월드컵 후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대인기피증'이 생겼고, 지난해부터 자선경기에서도 더 이상 그라운드에서 뛰거나 벤치에 앉지 않고 있다. 홍 감독이 당차게 할 수 있는 말은 "이제는 선택할 때 나 자신이나 가족을 좀 더 생각하겠다"는 것이다. 아픔이 묻어있는 말이다.
'영웅'은 '영웅'으로 남아야 한다. '영웅'이 '영웅'으로 존경받지 못하면 새로운 '영웅'도 탄생할 수 없다. 홍 감독도 '브라질의 족쇄'에서 탈출하기를 바란다. 중국에서 시작되는 제2의 지도자 인생은 또 다른 기회다. 충격을 잊고 맘껏 나래를 펼치기를 희망한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