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처럼 노상래 감독이 포항에서 다시 웃었다

기사입력 2016-04-24 18:58


성남FC와 전남 드래곤즈의 K리그 클래식 2016 5라운드 경기가 13일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렸다. 경기 전 전남 노상래 감독이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성남=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6.04.13/

24일 포항과의 원정경기를 앞둔 전남. 최악의 상황이었다. 전남은 개막 후 6경기 무승(3무3패)의 수렁에 빠진 상황. 설상가상으로 노상래 전남 감독은 지난 17일 광주전(1대2 전남 패)에서 퇴장 당해 벤치에 앉을 수 없다. 맞닥뜨려야 할 상대는 지난 5년 동안 한번도 이기지 못한 '제철가형제' 포항.

암담한 상황. 문득 노상래 감독의 머리에 지난 1995년 추억이 스쳐지나갔다. 경기 전 만난 노 감독은 느닷없이 21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에 포항과 경기를 하면 참 치열했다"고 운을 뗀 노 감독은 "돌아봤더니 전남의 창단 첫 승이 포항 원정이었다. 전북과의 개막전에서 패하고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포항에 와서 3대1로 이겼다. 그 추억이 (오늘)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넌지시 비쳤다. 그 때가 생생했던 이유? 노 감독은 "그때 골을 넣었다. 도움도 하고, 페널티킥도 얻었다. 3골을 다 내가 만들었다. 내가 잘한 경기라 잊을수가 없다"며 웃었다.

반복하고 싶었던 노 감독의 21년 전 추억. 간절한 바람은 현실이 됐다. 전남이 마침내 시즌 첫 승에 성공했다. 전남은 24일 포항스틸야드에서 열린 포항과의 2016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7라운드에서 전반 45분 터진 오르샤의 결승골을 앞세워 1대0으로 이겼다. 전남은 7경기만에 시즌 마수걸이 승리를 신고했다. 지긋지긋한 포항 징크스를 끊어낸 꿀맛같은 승전보이기도 했다. 전남은 2011년 10월 11일 1대0 승리 이후 5년 동안 14경기(6무 8패)만에 포항을 상대로 이겼다. 반면 2연패한 포항은 5경기 무승(2무3패)의 부진에 빠졌다. 순위도 11위로 추락했다.

전남은 이번 경기를 앞두고 많은 준비를 했다. 키워드는 '의지'였다. 경기 전 미팅에서 구단프런트와 숙소 지원 등의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선수들에게 보여줬다. 선수들의 의지를 고취시키기 위해서였다. 선발명단에서도 '의지'가 반영됐다. 노 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대거 투입하며 변화를 줬다. 스테보, 안용우 등 대신 배천석 이슬찬 이지민 등이 선발명단에 포함됐다. 노 감독은 "희생정신이 크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선수들이다. 지금 우리팀에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노 감독의 전략은 주효했다. 전남은 강한 압박으로 포항을 밀어붙였다. 원정이지만 주도권을 잡았다. 전반 38분 숫적우위까지 잡았다. 이슬찬과 경합 상황에서 발을 높게 든 포항 김동현이 퇴장을 당했다. 분위기를 탄 전남이 선제골을 넣었다. 오르샤의 오른발이 빛났다. 전반 45분 환상적인 오른발 감아차기로 포항의 골망을 흔들었다. 기세가 오른 전남은 마지막까지 의지를 잃지 않았다. 고비마다 무너지던 이전의 전남이 아니었다. 김민식 골키퍼는 목이 터져라 "집중해"를 외쳤다. 결국 전남은 후반 막판 포항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내며 감격의 첫 승을 거뒀다.

노 감독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내용적으로는 좋지 않았지만 결과가 중요한 경기였다. 처음부터 힘들어서 그 고마움을 다 표현하지 못했다. 주위 분들의 응원의 힘이 첫 승을 선물해줬다. 선수들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전남만의 축구 색깔을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감격해했다.


포항=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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