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화려한 복수, 7골 터진 K리그… 흥분이 춤을 췄다

기사입력 2016-06-06 20:56



"전환점이자 위기다. 서울전은 자존심과 직결된다. 다음이 없다."

조성환 제주 감독의 절박한 출사표였다. 제주는 지난달 28일 울산과의 홈경기에서 1대2로 패하며 올 시즌 안방불패가 깨졌다. 2연승의 흐름도 끊겼다. FC서울 원정도 힘겨워 보였다. 제주는 2008년 5월 이후 8년 동안 상암벌에서 단 1승도 없었다. 11경기 연속 무승(2무9패)에 허덕였다.

서울은 1위 탈환의 기회였다. 최용수 서울 감독은 경기 전 "지금 순위표와 선두 탈환은 신경 안쓴다. 지나치게 의식하다보면 힘이 들어갈 수 있다"고 했지만 내심 선두 복귀를 노렸다. 서울은 지난달 29일 전남과 1대1로 비기며 1위에서 2위로 떨어졌다. 제주를 꺾으면 선두에 복귀할 수 있었다.

뚜껑이 열린 상암벌은 골의 홍수였다. 무려 7골이 터지는 난타전이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이날 주연은 제주였다. 제주가 서울 원정 징크스를 마침내 무너뜨렸다. 제주는 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6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 4대3으로 극적으로 승리했다. 반면 서울은 1위 탈환에 실패했다. 이날 혈투는 서울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16강전으로 연기된 일전이었다.

각본없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바뀌고, 또 바뀌었다. 선제골은 제주의 몫이었다. 전반 41분 역습 상황에서 마르셀로의 크로스를 정영총이 헤딩으로 연결, 골망을 흔들었다. 서울의 반격은 후반 시작과 함께 불을 뿜었다. 고요한이 선봉에 섰다. 후반 2분과 10분 릴레이골을 터트리며 순식간에 역전에 성공했다. 서울은 후반 16분 윤주태가 추가골을 터트리며 3-1로 리드를 잡았다. 사실상 희비가 엇갈리는 듯 했다.

끝이 아니었다. 제주의 뒷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히든카드는 김호남이었다. 조 감독은 "호남이의 몸상태가 가장 좋다"며 맹활약을 예고했다. 전반에 그를 아꼈다. 후반 14분 교체투입된 김호남의 원맨쇼는 후반 22분 시작됐다. 마르셀로의 만회골을 어시스트한 그는 후반 32분 헤딩으로 골네트를 갈랐다. 승부는 다시 원점이었다. 김호남은 후반 34분 권순형의 재역전골을 어시스트했다. 1골-2도움을 기록하며 서울의 악연을 끊는 주역으로 우뚝섰다.

제주는 서울 원정에서 12경기 만에 마침내 승리를 거두며 징크스에서 탈출했다. 승점 20점(6승2무4패)으로 4위 자리도 탈환했다. 반면 서울은 승점 23점(7승2무3패)으로 2위를 유지했다.

휘슬이 울리자 두 주먹을 불끈쥐고 환호한 조 감독은 "그동안 서울에서 결과를 못 가져온 간절함이 있었다. 선수들의 자존심을 세운 경기다. 두 번째 라운드에 돌입하는 중요한 경기였는데 선수들이 끝까지 포지하지 않고 이긴 게 대단하다. 칭찬해주고 싶다"며 기뻐했다.


승리의 주연 김호남은 지난 시즌까지 광주FC에서 뛰다 올 시즌 제주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오랫동안 이어진 팀의 '서울 원정 징크스'를 깨는데 한몫을 해서 기쁘다"며 "오늘까지 제주에 와서 3골을 넣었는데 앞서 2골을 넣었던 경기는 모두 졌다. 골을 넣고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날이 오늘이 됐다"며 미소를 지었다. 지난해까지 '호남의 아들'이었던 김호남은 "제주에 와서 동료들이 내 이름에 '두'자를 붙여서 '호남두'라는 별명을 새로 만들어 줬다. 쑥스럽지만 별명에 어울리는 활약을 계속 보여주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제주전에서 아쉬움을 삼킨 최 감독은 "전반 실점이후 경기 내용이 좋지 못해 끌려갔다. 후반에 힘들게 뒤집었지만 템포 조절에 실패했다. 선수들은 열심히 했지만 수비적으로 좀 더 보완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승패를 떠나 이날 경기는 K리그의 힘이었다. 90분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 7골이 터진 박진감 넘치는 혈전에 상암벌도 흥분의 도가니였다.
상암=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