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2016]지루해진 유로, 24개국 체제는 실패다

기사입력 2016-06-21 17:59


ⓒAFPBBNews = News1

유로 대회의 묘미는 역시 수준 높은 경기력이다.

대회 규모나 화제성, 마케팅적 측면에서는 역시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참여하는 월드컵이 최고다. 하지만 경기력 면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월드컵은 전 대륙에 골고루 쿼터를 나눠준다. 전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32개국만의 축제가 아니다. 아시아에도 4장을 줘야하니 강호가 즐비한 유럽팀들이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지금이야 아시아, 아프리카 팀들의 수준이 많이 올라갔지만 그 전에는 아시아와 유럽팀간의 대결에서 8대0 같은 일방적 경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유로 대회는 다르다. 축구에 관한 최고를 자부하는 유럽팀들만 나선다. 조별리그부터 매경기 월드컵 16강 이상의 매치업이 이어진다. 수준도 대단하다. 유로 대회는 세계 축구의 트렌드를 살펴볼 수 있는 무대다. 현재 세계 축구를 주름잡는 제로톱, 스리백 등이 유로 대회를 통해 자리잡았다. 여기에 역사적 배경까지 겹쳐지며 매경기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다. 월드컵 보다 유로 대회가 재미있다는 평가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어도 이번 유로2016 대회 전까지는 그랬다.

수준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유로 대회를 이끌어온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전통의 강호들은 여전히 유로2016을 누비고 있고,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바르셀로나), 가레스 베일(레알 마드리드), 메주트 외질(아스널), 케빈 더 브라이너(맨시티) 등 슈퍼스타들도 여전히 반짝반짝 빛난다.

하지만 이번 유로2016은 재미가 없다. 21일(한국시각) 프랑스 생테티엔 스타드 조프루아 기샤르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슬로바키아의 유로2016 B조 조별리그 최종전이 지루해진 유로 대회의 모습을 대변한다.

우선 경기 전 상황부터 살펴보자. 잉글랜드는 승점 4(1승1무)로 조 1위, 슬로바키아는 승점 3으로 조 3위를 달리고 있었다. 두 팀 모두 16강을 위해서는 무리할 이유가 없었다. 모험을 걸어야 하는 승점 3점 보다는 안전한 승점 1점이 답이었다. 경기도 그렇게 진행됐다. 잉글랜드는 조심스러웠고, 슬로바키아는 노골적으로 '잠궜다'. 치열함 대신 지루한 볼 돌리기가 이어졌다. 선수 교체도 수비수로 진행됐다. 결국 경기는 '의도대로' 0대0으로 끝이 났다. 잉글랜드는 결정력 부족으로 조 1위의 기회를 날렸지만 최소한 조 2위를 확정지었다. 슬로바키아는 승점 4점을 확보하며 16강 진출의 가능성을 높였다.

유로2016은 참가국이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어났다. 토너먼트도 8강에서 16강 제도로 바뀌었다. 각 조 3위까지 16강에 오를 기회가 생겼다. 각 조 3위팀 중 4팀에게 16강행 티켓이 주어진다. 모험을 걸어야 하는 예년과 달리 안정된 승점 관리로 조별리그로 통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것이 바로 유로 대회의 질을 떨어뜨린 주범이다. 객관적 전력에서 조 2위를 확보할 수 없는 팀들이 조 3위 자리를 위해 지나치게 수비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이번 대회는 경기당 1.82골 밖에 터지지 않았다. 4년전 유로2016 조별리그 평균 득점 2.29골, 8년 전 유로2008 조별리그 평균 득점 2.38골과 비교해 0.5골이나 떨어진 수치다. 물론 골이 전부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박진감 있는 경기가 많지 않았다.

아이슬란드, 북아일랜드, 알바니아 등은 체력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수비전술로 이번 대회의 다크호스로 자리잡았다. 이들의 수비를 뚫지 못한 강국들의 책임도 있지만,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만든 유럽축구연맹(UEFA)의 책임도 크다. 요아킴 뢰브 독일 감독도 "16강 체제가 적당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재미없는 대회의 폐혜가 고스란히 팬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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