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원의 센터서클]전설과 전설의 '파워 시프트', 월드컵 4강 세대 바통터치

기사입력 2016-06-26 18:12



경기는 선수가 한다. 훌륭한 선수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팀은 정상에 더 가까워 진다. 그러나 그 키는 감독이 쥐고 있다. 선택은 감독의 몫이다.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에 따라 결과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축구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무려 26년간 맨유를 '철권 통치'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2012~2013시즌을 끝으로 맨유와 이별한 퍼거슨 감독이 증명했다. 맨유는 여전히 '퍼거슨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가 지휘봉을 내려놓은 지 겨우 3년이 흘렀을 뿐이지만 이미 세 번째 감독 교체가 이루어졌다. 데이비드 모예스, 루이스 판 할에 이어 2016~2017시즌부터 조제 무리뉴 감독이 맨유를 이끈다. 사령탑이 팀에 차지하는 비중이 50%가 넘는다는 분석은 결코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닌 듯 하다.

지난 주 K리그에서 이례적인 감독 교체가 이루어졌다. 프로축구사에 남을 변화였다. 경질이 아니었다. FC서울은 잘 나가던 최용수 감독(45)을 떠나보냈다. 마치 선수 이적처럼 그는 기본 연봉만 300만달러(약 35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중국 슈퍼리그에 진출했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광저우 헝다 감독, 스벤 외란 에릭손 상하이 상강 감독, 펠리스 마가트 산둥 루넝 감독, 그레고리오 만사노 상하이 선화 감독 등 세계적인 지도자들과 꿈꿔온 경쟁이 현실이 됐다. 최 감독은 7월 1일부터 장쑤 쑤닝의 지휘봉을 잡는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8강, K리그 2위, FA컵 8강. 올 시즌 최 감독이 서울을 떠나기 전까지 남겨놓은 성적이다.

최 감독의 빈자리는 황선홍 감독(48)이 채운다. 사령탑으로 부산과 포항을 찍은 황 감독이 수도 서울에 입성한다. 최 감독이 가고, 황 감독이 오는 긴박한 교체는 7일 시작돼 21일 매듭지어졌다. 황 감독의 선임은 최 감독도 몰랐다. 서울은 극비리에 황 감독의 영입을 진행했다. 서울의 명성에 걸맞는 유일한 대안은 '황선홍 카드' 뿐이었다. 황 감독은 한국에 없었다. 세계 축구의 흐름을 공부하기 위해 유로 2016이 벌어지고 있는 프랑스에 머물고 있었다. 서울과 황 감독이 직접적으로 나눈 대화는 없었다. 황 감독의 에이전트를 통해 협상이 진행됐다. 다행히 황 감독의 고민도 길지 않았다. 제의와 수락이 닷새 만에 이루어질 정도로 일사천리였다. 프랑스에서 24일 오전 귀국한 황 감독은 이날 오찬을 겸해 구단 수뇌부와 상견례를 가졌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세대의 사령탑 바통터치다. 최용수와 황선홍, 전설과 전설의 '파워 시프트'다. 두 사령탑 모두 현역에 이어 지도자로서도 성공 시대를 걷고 있다. 최 감독은 2012년, 황 감독은 2013년 각각 K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FA컵에서도 두 감독 모두 정상에 입맞춤했다. 황 감독은 2012년과 2013년, 최 감독은 2015년 우승을 차지했다. ACL의 경우 최 감독의 최고 성적이 준우승(2013년), 황 감독은 8강(2014년)이었다. 최 감독은 서울, 황 감독은 포항에서 쌓은 금자탑이다.

월드컵 4강 세대가 벤치도 완벽하게 장악했음을 의미한다. 감독은 시쳇말로 '파리 목숨'이지만 현재의 환희를 이어간다면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신화' 홍명보 항저우 뤼청 감독에 이어 둘 가운데 A대표팀 사령탑이 탄생할 가능성도 높다.

최 감독은 중국에서 제2의 지도자 인생을 연다. 황 감독의 서울 시대는 27일 열린다. 이날 오후 2시 취임기자회견 후 오후 4시 선수단과 상견례를 갖는다. 황 감독은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25일 서울의 포항 원정경기는 황 감독의 숙제였다.

벤치에 감독이 없었다. 그 하나만으로 서울은 흔들렸다. 박용우 이석현 윤일록 정인환 김원식 등 미드필더와 수비가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했다. 넋나간 플레이로 패배를 자초했다. 서울은 황 감독의 친정팀인 포항에 1대2로 무릎을 꿇고 올 시즌 포항전에서 2연패를 당했다.


황 감독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잡는 것이 1차적인 임무다. 대대적인 변화는 혼란을 불러올 수 있지만 수술이 필요한 곳에는 칼을 대야 한다. 필요한 포지션에는 과감한 변화도 필요하다. 서울 사령탑 데뷔전이 코앞이다. 29일 성남과의 홈경기부터 그의 진가를 발휘해야 한다.

황 감독과 최 감독은 K리그에서 뜨거운 라이벌이었다. 길이 엇갈렸고, 승부는 다시 원점이다. 둘은 과연 어떤 미래를 열까. 벤치의 힘이 풍성해지면, 한국 축구도 부자가 된다. 황 감독과 최 감독이 성공적인 지도자 인생을 계속 이어가길 바란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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