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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과 올림픽, 대회마다 온도 차는 있지만 축구가 한껏 주목 받는 '대목'이다.
한국 축구의 첫 올림픽 도전은 1948년 런던 대회였다. 20박21일 만에 런던에 도착했다. 배로 지구 반바퀴를 돌았다. 조별리그 없이 16개팀이 단판승부로 8강행이 결정됐다. 출발은 달콤했다. 멕시코를 5대3으로 꺾고 8강에 올랐다. 올림픽 본선 첫 무대에서 승리의 환희를 누렸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스웨덴과의 8강전에서는 0대12로 참패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환호와 좌절이 교차했던 첫 걸음 이후 한국축구에 있어 올림픽은 미지의 세계였다. 참담할 지경이었다. 1952년 헬싱키 대회는 재정문제로 불참했다. 지역예선이 처음으로 도입된 1956년 멜버른 대회와 1960년 로마 대회는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탈락했다. 또 다시 본선 진출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64년 도쿄 대회였다. 그러나 세계 무대의 벽은 더 높아졌다. 1차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에 1대6으로 대패한 후 브라질(0대4패)과 아랍공화국(0대10 패)에 연이어 대패하며 쓸쓸히 짐을 샀다. 도쿄 대회의 악몽으로 한국은 1968년 멕시코 대회부터 1984년 LA 대회까지 5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하며 암흑기를 걸었다.
여기서 하나 주목할 부분이 있다. 2000년대 이후 월드컵과 올림픽 무대에서 업다운을 반복해 온 한국 축구의 흐름이다. 거짓말처럼 환희→눈물의 '냉-온탕 징크스'가 생겨났다. 월드컵의 경우 2002년 한-일 대회에서 기적의 4강 진출을 일궈냈다. 하지만 2006년 독일 대회에선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10년 남아공 대회는 또 다른 반전이 있었다.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하지만 4년 후 브라질 대회에선 단 1승도 챙기지 못하고 1무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같은 흐름은 올림픽도 비슷하다. 2000년 시드니 대회 조별리그 탈락→2004년 아테네 대회 8강→2008년 베이징 대회 조별리그 탈락→2012년 런던 대회 동메달로 이어졌다.
리우 대회의 결전을 눈앞에 두고 달갑지 않은 '징크스'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신태용호가 이참에 지긋지긋한 반복의 악순환 고리를 단숨에 끊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태용호는 여러모로 4년 전과 비교돼 왔다. '골짜기 세대'라는 오명도 있었다. 그들은 비교를 거부했다. 독기를 품고, 더 똘똘 뭉쳤다. 출사표도 화끈했다. 모두가 런던 대회보다 더 높은 꿈을 꾼다고 거침 없이 이야기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동안 태극전사들은 착실하게 성장했다. 스웨덴과의 최종 리허설의 3대2 역전승은 신태용호의 현 주소이자 희망이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이다. 개최국 브라질은 간판 네이마르를 100주년을 맞은 코파아메리카 센테나리아오에서 아끼는 대신 올림픽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로 발탁했다. 그만큼 올림픽 축구 열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리우올림픽을 화려하게 수놓을 꽃 중의 꽃이다.
런던 대회의 환상에 팬들의 눈높이가 달라졌다. 신태용호로선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압박감도 즐겼으면 한다. 유쾌한 도전이 되기를 기대한다.
"리우올림픽에 출전하는 우리 선수들은 모두 좋은 기량을 갖고 있다. 특별히 조언해줄 건 없다. 다만 올림픽은 시원하게 뛰어볼 만한 대회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경기에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대회다. 즐기고 왔으면 좋겠다. 어떻게 될까, 어떻게 할까 생각하기보단 쏟을 수 있는 것을 모두 보여줘야 한다."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인 박주영(31·서울)의 조언이다. 그 말이 곧 정답이다. 대표팀이 걸어야 할 길이다. 승부의 세계에선 늘 환희와 눈물이 교차한다. 한국 축구사는 그들을 위한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태극전사들의 위대한 도전이 시작된다. 모든 선수가 '후회없는 도전이었다'고 자평하는 대회가 되기를 바란다.
사우바도르(브라질)=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