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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영국)=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모두들 에데르(릴)가 골을 넣는 순간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뇌 속 기억세포는 에데르의 골을 재빠르게 지워버렸다. 대신 그의 옆에서 더 기뻐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의 얼굴만 확실하게 담아두었다. 7월 10일 프랑스 생드니에서 열린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유로 2016 결승전 영웅 에데르는 그렇게 잊혀졌다.
고아 에데르
에데르는 1987년 12월 포르투갈령이었던 기니비사우에서 태어났다. 3살 때 포르투갈로 이주했다. 5년 뒤 에데르는 고아원으로 갔다. 부모 모두 에데르를 버렸다.
시간이 지났다. 에데르는 어머니와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기적이지는 않았다. 어색함을 감출 수 없었다. 에데르는 "어쩔 수 없었다. 나나 어머니나 공유할 수 있는 순간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래도 에데르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했다. 에데르의 어머니는 영국에 산다. 에데르의 여동생도 영국 울버햄턴에 산다. 자주 연락하고 만나곤 한다. 문제는 에데르의 아버지다.
종신형을 사는 아버지
에데르는 16세가 되던 2003년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자신의 아버지인 필로메노 안토니오 로페즈가 영국 노리치 법원으로부터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죄목은 아내 살해였다. 에데르에게는 법률상 '새 어머니'였다. 지역 신문은 에데르의 아버지가 포르투갈에서도 3차례 강도 혐의로 수배를 받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영국으로 온 것도 수배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에데르는 이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 있지 않아서 자세한 상황은 모른다"고 말한 그는 "그래도 내 아버지는 결백하다고 말한다. 나 역시 아버지를 믿는다. 아마도 법원이 잘못 결정한 것"이라고 아버지를 옹호했다.
에데르는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22세때부터 아버지 면회를 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로 2016 결승전 후에는 전화통화도 했다. 그 때 에데르의 아버지는 "아들아. 너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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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데르는 비교적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투리젠세와 아카데미카를 거쳐 브라가에서 골잡이로 활약했다.
하지만 2014년 브라질월드컵이 문제였다. 포르투갈은 1승1무1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비난의 화살은 에데르에게 집중됐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에데르를 교통 고깔에 비유하며 조롱했다. 에데르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졌다.
"내 정신은 정말 가서는 안될 곳까지 내려갔다. 너무 절망스러웠다"고 했다. 이어 "삶의 끝까지도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그를 일으켜세운 것은 '한 팬'이었다. 수산나 토레스였다.
"브라가에서 첫 경기를 마친 뒤였다. 볼을 차고 가다가 브라가의 유니폼을 입은 한 소녀팬을 만났다. 그녀의 어머니가 수산나였다. 수산나는 딸이 나와 사진을 찍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그로부터 인연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메일을 주고받던 인연은 잠시 멈췄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전 수산나는 에데르에게 딸이 월드컵을 보고 싶어한다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에데르는 그 메시지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뒤 확인했다. 에데르는 너무나 미안함을 느꼈다.
수산나의 딸이름이 찍힌 유니폼을 들고 찾아갔다. 수산나는 에데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수산나는 심리코치를 활용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에데르는 심리 코치를 찾아갔고, 결국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다.
에데르는 이제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다. 그리고 유로 2016 결승전 결승골을 뽑아냈다.
에데르는 자신있게 말했다.
"사람들은 꿈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을 믿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