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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전통의 명가 수원 삼성이 결국 몰락했다.
과거 K리그 최고의 명문팀으로 '레알수원'이란 애칭을 얻은 수원이다. 그동안 리그 우승 4회, FA컵 우승 3회,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아클럽챔피언십(아시아챔피언스리그 전신) 우승 2회 등 현존 최강 전북 현대 못지 않은 황금기를 누렸다. 스플릿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에도 2012년 4위, 2013년 5위, 2014년 2위, 2015년 2위 등 줄곧 '윗물'에서 놀았다.
아직 FA컵 우승 희망(현재 4강 진출)이 남아있지만 클래식 시즌에서 최악 성적표를 냈고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서도 조기 탈락한 점을 보면 '몰락'이란 단어가 과하지 않다.
공교롭게도 올 시즌 수원은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똑같은 상황을 맞고 있다. 한국 프로스포츠의 양대산맥를 구축하던 두 명가가 나란히 무너진 것이다.
위축된 투자…선수보강 부실 초래
2015년 시즌이 끝난 지난 겨울. 괴담이 나돌았다. "수원이 고액 연봉 선수들을 정리한다더라"는 '고액 연봉자 퇴출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국가대표 골키퍼 정성룡을 비롯해 오범석 등 굵직한 자원들이 줄줄이 수원을 떠났다. 수원의 긴축재정은 삼성그룹 삼성스포츠단이 제일기획으로 넘어가면서 계속 이어져왔다. 제일기획은 2014년 수원 삼성과 삼성 썬더스(남자농구), 삼성 블루밍스(여자농구)를 편입했고, 2015년 삼성 블루팡스(프로배구)에 이어 2016년 삼성 라이온즈까지 삼성의 모든 프로스포츠를 흡수했다. 이건희 회장이 왕성하던 시절에 비해 삼성그룹의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크게 약화됐다는 우려가 현실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컨트롤타워가 그룹에서 제일기획으로 옮겨지면서 스포츠는 옛날처럼 '귀염둥이'가 아닌 경영합리화 대상 계열사가 됐다. 이 과정에서 2015년 선수단 총연봉 87억원으로 전북(120억원)에 이어 2위였던 수원은 올해 12개팀 중 5위 수준(50억여원)으로 살림을 줄였다. 고액 연봉 지출을 줄인 가운데 선수보강에는 지갑을 선뜻 열지 못했다. 젊은 선수 육성이라는 장기 비전이 있기도 했지만 과거처럼 '프로의 경쟁력은 돈'이라는 논리가 통할 구단 분위기가 아니었다. 한때 "너무 투자를 안 한다"는 지적을 만회하기 위해 '대어' 에두(전북) 영입에 나섰지만 충분한 돈을 보장하지 못해 빼앗기다시피 한 뒤 외국인 선수라고는 사실상 산토스 1명으로 버티는 신세를 맞았고 성적도 동반 하락했다. 하반기에 뒤늦게 조나탄, 카스텔렌을 보강했지만 팀 성적과 사기는 이미 추락한 상태였고 무엇보다 비용절감 1순위였던 골키퍼 특수 포지션의 대체자를 찾지 못한 후유증이 컸다.
수원의 고질병 시간이 필요하다?
일부 감독들은 "올 시즌 수원은 만만한 팀"이라 했고, 진작부터 "상위그룹에 들지 못할 것"이라 예상하기도 했다. 수원이 이렇게 '종이 호랑이'가 된 것은 시즌 내내 보여준 경기력 때문이다. 올 시즌 수원의 현실을 압축한 경기가 하필 상위그룹을 무산시킨 24일 인천전이었다. 후반 40분까지 2-0으로 잘 앞서가며 오랜만에 낙승을 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더니 7분 사이 2골을 내주며 또 '선제골 이후 실점' 고질병에 자멸하고 말았다. 올 시즌 수원의 (7승)16무(9패) 가운데 무려 11무가 선제골 이후 동점 허용이었다. 부끄럽고도 희귀한 올 시즌 최다 기록이다. 서정원 감독은 "경기내용으로는 패하지 않아도 됐을 (무승부의)3분의1만 챙겼어도…"라며 땅을 친다. 수원의 이같은 결과는 아직 갖춰지지 않은 조직력 때문이다. 염기훈 권창훈 산토스가 건재하면 뭣하나, 젊은 선수들의 경험 부족으로 인한 실수가 매경기 중요한 순간에 밸런스를 흐트리고 만다. 급격한 선수 구성 변화를 메워나갈 과도기가 필요하지만 주변에서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잘 나갔던 과거 명성의 추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사무국과 코칭스태프도 조급해지고 리드를 지키려다 실패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에이스 권창훈도 이른바 뜨기까지 3년이 걸렸다. 결국 수원의 고질병은 시즌 중에 치유하기 힘든 병이었다.
행운의 여신도 외면했다
안 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졌다. 수원은 유독 불운에 시달렸다. 시즌 개막 전 에두 영입 직전에 실패하면서 시작된 외국인 선수 악재는 시즌 내내 이어졌다. 3명의 보유 한도가 있지만 제대로 기용한 이는 산토스뿐이다. 나머지는 부상, 적응실패를 돌아가며 했다. 그나마 기댈 언덕이던 주요 국내선수도 부상에 신음했다. 홍 철은 시즌 초반 발목 수술을 한 뒤 9월이 돼서야 복귀했다. 공·수의 핵심 염기훈 권창훈과 이정수는 상위그룹 운명이 걸린 9월에 전력에서 이탈했다. '신세계 스로인 사건' 등 판정 논란도 많이 겪었다. 특히 21일 광주전(1대1 무) 동점골 허용의 경우 한국프로축구연맹도 사후 영상 분석 결과 오프사이드라고 인정했다. 시즌을 치를 때마다 억울한 경기 없는 팀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1승도 아쉬웠던 수원에게는 유독 운없는 시즌이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