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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0경기 실화?' 울산GK 조수혁의 미친 선방 "즐기는 마인드X원팀"[ACL4강 인터뷰]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20-12-12 06:00




"리그 0경기인 선수가 저렇게 막는다고?"

지난 10일 카타르에서 펼쳐진 2020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울산 현대와 베이징 궈안의 8강전, 조수혁의 미친 선방을 지켜본 팬들의 현실 반응이다.

'울산 베테랑 수문장' 조수혁(33)은 이날 베이징 궈안 외국인 공격수들의 파상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냈다. 비에라, 아우구스투, 페르난도, 알란이 쉴새없이 슈팅을 쏘아올렸고, 조수혁은 베이징의 모든 슈팅을 거침없이 막아섰다. 결국 베이징의 22개의 슈팅은 모두 불발됐다. 주니오의 멀티골을 굳건히 지켜낸 울산은 2대0으로 승리하며 K리그 구단 중 유일하게 4강에 이름을 올렸고, 무려 8개의 슈퍼세이브를 기록한 조수혁은 11일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선정한 이주의 선수에서 평점 8.5점, 최고점으로 1위에 올랐다.


2017년 울산 조수혁  사진제공=프로축구연맹

2008~2012년 서울, 2013~2016년 인천에서 활약한 조수혁은 2017년 김도훈 감독과 함께 울산 유니폼을 입은 이후 4년째 울산 골문을 지켜왔다. 첫 2년은 로테이션 시스템 속에 오승훈 김용대와 번갈아 나섰지만, 지난해 '국대 골키퍼' 김승규 영입 후 2경기를 뛰었고, 올해 '빛현우' 조현우 영입 후엔 리그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대한민국 원톱, 국대 골키퍼 조현우가 올 시즌 울산의 모든 골문을 지켰다. 조수혁에겐 지난 2월 11일 ACL 조별리그 1차전 FC도쿄전(1대1무) 출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럼에도 시즌 내내 찡그리는 얼굴 한번 보지 못했다. '절친 후배' 조현우와 출퇴근을 함께 하며 그는 늘 웃는 얼굴이었다. 코로나 시대, 선수들을 만날 수 없는 울산 팬들에게 그의 유튜브는 소통의 통로가 됐다. 선후배들의 개인훈련, 출근길, 원정길에 서슴없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팬 눈높이에서 속얘기, 뒷얘기를 가감없이 담아내는 그의 콘텐츠에 팬들은 열광했다. 아내와 강아지의 이름에서 따온 채널명 '베리나히쑤'는 그의 별명이 됐다. 엄지와 검지를 펴보이는 '베리나히쑤' 포즈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한 시즌 내내 뒤에서 묵묵히, 팀과 팬을 위해 즐겁게 달려온 베테랑 골키퍼가 꿈의 ACL 무대에서 날아올랐다. '걸출한 후배' 조현우가 벤투호 코로나 양성반응, 심리적 후유증으로 ACL에 합류할 수 없게 된 상황. 조수혁은 후배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우고 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별명처럼 '베리나히쑤(very nice)'한 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카타르 입성 후 조별리그에서 초반 4승을 책임졌다. 16강을 조기확정 지은 후 FC도쿄전, '1999년생 막내 골키퍼' 서주환의 데뷔전 승리를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사비를 털어 선수단에 햄버거를 돌렸다. 가장 중요한 16강전, 8강전 단판승부에서 무실점 승리로 8년만의 4강행을 견인했다. 멜버른 빅토리에 3대0, 베이징 궈안에 2대0, 2경기 연속 클린시트에 대해 조수혁은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나 혼자 잘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공격라인에서부터 수비 가담을 정말 많이 해줬다. 전체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조직력을 유지해온 덕분에 무실점이라는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경기 전부터 즐겁게 하자고 이야기했다. 즐기는 마인드로 경기를 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미소 지었다.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태도다. 지난 11월 카타르 도하행 비행기에 오르던 밤, 다소 무거운 분위기와 부담감 속에서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었다. "(조) 현우가 없는 상황에서 팬들은 많이 불안하실 것이다. 현우는 우리나라 최고의 골키퍼이고 현우가 없으면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하는데 보시는 입장에선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대한 노력해서 공백을 메울 수 있게끔 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래 안뛰어서 템포, 흐름을 얼마나 빨리 찾느냐가 관건이겠지만, 잘 준비돼 있다. 자신 있다"고 했었다. "선수들도 팬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더 열심히 몸 날리고 앞에서부터 더 강하게 싸워줄 것이다. 저뿐만 아니라 수비 전원, 팀 전원이 똘똘 뭉쳐 빈자리를 잘 메우겠다"고 했다.

조수혁은 그날 밤, 그 약속을 지켰다. FC도쿄전으로 첫 단추를 끼웠던 조수혁이 ACL 무대에서 매경기 울산의 승리를 지켜내고 있다. 개인과 팀의 시련을 모두 이겨낸 4강, 온갖 악재 속에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쳐 이뤄낸 4강이라 더욱 뜻깊다. 2년 연속 리그 준우승에 울었던 울산이 해피엔딩을 꿈꾼다. 13일 오후 7시(한국시각) 빗셀 고베와의 4강전에서 결승행을 다툰다. 2012년 이후 8년만의 ACL 우승까지 이제 단 2경기가 남았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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