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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의 첫우승,지소연이 지소연했다" '누구도 손댈수 없었던' 여축 트로피 세리머니X훈훈한 뒷얘기[동아시안컵 우승 현장]

최종수정 2025-07-17 15:30

"20년만의 첫우승,지소연이 지소연했다" '누구도 손댈수 없었던' 여축 …

"20년만의 첫우승,지소연이 지소연했다" '누구도 손댈수 없었던' 여축 …

[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이 순간을 20년 기다렸다. 트로피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웃음)"

'리빙 레전드' 지소연이 16일 동아시안컵에서 20년 만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환호했다.

2006년 10월 30일 '15세'의 나이에 최연소 태극마크를 단 지소연이 여자대표팀에서 무려 19년 만에 들어올린 빛나는 첫 트로피다. 2010년 20세 이하 월드컵 3위를 이끈 지소연은 잉글랜드 첼시, 일본 고베 아이낙 등 가는 팀마다 '마법사'라는 애칭과 함께 어김없이 우승을 이끌었지만 대표팀에선 유독 우승과 연이 닿지 않았다. 2022년 아시안컵 결승에서 중국에 2대3 역전패하며 준우승했고, 아시안게임에서도 동메달만 연거푸 3번 수집하며 분루를 삼켜야 했다.


"20년만의 첫우승,지소연이 지소연했다" '누구도 손댈수 없었던' 여축 …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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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한축구협회

"20년만의 첫우승,지소연이 지소연했다" '누구도 손댈수 없었던' 여축 …
출처=KFA
아쉽고, 아깝고, 눈물 쏟는 날이 많았다. 될 듯 될 듯,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잉글랜드, 미국 리그에서 날마다 접하는 일상과는 전혀 다른 국내 여자축구, 괴리의 벽 앞에서 좌절한 날도 많았다. 하지만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20년을 하루같이 이 악물고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열릴 것 같지 않던 우승의 문이 마침내 열렸다. 중국과 일본이 예상을 뒤엎고 0대0으로 비긴 후 한국이 대만에 2대0으로 완승하며 대한민국에 20년 만의 선물같은 우승이 찾아왔다.

20년 만의 우승 시상식, 지소연은 '절친' 김혜리와 함께 1열에 서서 직접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캡틴' 이금민이 기꺼이 언니들에게 트로피 영접의 기회를 양보했다. '2010년 20세 월드컵'에서 함께 시상대에 섰던 지소연, 김혜리가 우승컵을 번쩍 들어올린 후 2열의 이금민 장슬기가 다시 한번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후배들이 번갈아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환호했다. 이금민은 "소연언니가 부탁을 좀처럼 하지 않는데 라커룸에서 부탁을 하시더라. 언니들이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는지,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당연히 그렇게 했다"며 마음을 털어놨다.

지소연은 "아마 아무도 트로피에 손 댈 수 없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 순간을 20년 기다렸다. 내가 먼저 트로피는 아무도 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웃음)"고 했다. "우승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20년이 걸렸는데 너무 기쁘다.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고 계속해서 버텨온 제 자신에게 고생했다 말해주고 싶은 순간이다. 홈에서 이렇게 우승하려고 여태까지 버틴 것같다"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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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의 첫우승,지소연이 지소연했다" '누구도 손댈수 없었던' 여축 …
돌파하는 지소연<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후배들의 쾌거에 눈물이 났다는 이미연 대한축구협회 이사(문경 상무 감독)는 한마디로 "지소연이 이름값을 한 대회"라고 평했다. 지소연은 첫 경기인 중국전 1-2로 패색이 짙었던 후반 추가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박스 안에서 흘러나올 볼을 이어받아 강력한 대포알 슈팅을 쏘아올렸다. 이 슈팅은 그림같은 궤적으로 골망으로 빨려들었다. 무더위를 한방에 날리는 통렬한 동점골, 왜 지소연인가를 증명하는 원더골로 팀을 구했다.

일본과 1대1로 비긴 후 '이기면 우승'인 대만전에서도 그녀의 발끝은 어김없이 빛났다. 후반 25분, 강채림이 얻어낸 페널티킥 찬스, 20년 만의 우승 향방을 결정지을 절체절명의 승부처에서 '베테랑 강심장' 그녀가 두려움 없이 골대 앞에 우뚝 섰다. 낮고 빠른 슈팅이 골망을 흔들었다. 모든 경기, 모든 골이 역사인 '리빙레전드' 지소연의 A매치 169경기 74호골은 20년 만의 우승, 결승골이 됐다.


제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부담될 수밖에 없는 장면에서 그녀는 리더다웠다. 지소연은 "솔직히 나도 많이 떨렸다. 나도 차고 싶지 않았다. '자신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대답을 안 하더라"며 자신이 키커로 나선 이유를 밝혔다. "다들 머뭇거리기에 내가 차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적극성을 갖고 차겠다면 기꺼이 키커 자리를 내줄 생각이었다. 이번엔 내가 찼지만, 앞으로 내가 아닌 프리키커나 페널티키커가 나왔으면 좋겠다"며 후배들의 성장과 분투를 열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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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이 절실했던 만큼 지소연은 이날도 그라운드 안팎에서 '폭풍 잔소리' 악역을 자청했다. "전반전 너무 답답했다. 하프타임 라커룸에서 '이렇게 하면 우승 못한다. 정신 차리라'고 화를 많이 냈다. 그렇게 화내는 걸 처음 본 어린 친구들은 놀랐을 것"이라고 했다. 20년 만에 우승 기회를 잡은 월드클래스 선배의 절박한 외침에 후배들도 한발 더 뛰는 투혼으로 답했고 끝내 우승 미션을 완수했다.

이날 '일본전 동점골의 주인공' 정다빈이 수차례 찬스를 놓치고 자책한 데 대해 지소연은 "자책할 필요가 있다"더니 "많이 실망스럽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아직 스무살 어린 선수이고 과정이다. 부족한 점을 보완해가면 좋은 선수가 될 것"이라며 따뜻한 격려를 전했다. "11월 소집까지 베테랑도 어린 선수도 각자 소속팀에서 최선을 다해 기량을 끌어올려야 한다. 개개인이 강해져야 대표팀이 강해진다. 11월 좀더 성장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만나자"고 독려했다. 한 번의 우승에 만족할 뜻은 없다. 내년 1월 호주아시안컵, 2027년 브라질여자월드컵에서 어린 후배들과 함께할 여자축구 최고의 순간을 꿈꾸고 있다.


"20년만의 첫우승,지소연이 지소연했다" '누구도 손댈수 없었던' 여축 …
2005년 동아시안컵에서 우승한 유영실 서울시청 감독, 송주희 경주한수원 감독 등 선배들과 신상우호 후배들이 20년 만의 안방 우승 후 다함께 승리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KFA
20년 만의 우승 세리머니, 20년 전인 2005년 북한, 중국을 꺾고 일본과 비기며 동아시안컵 초대 챔피언에 올랐던 '선배' 유영실 서울시청 감독, 송주희 경주한수원 감독과 이미연 대한축구협회 이사(문경 상무 감독), 안태화 창녕WFC 감독과 함께 시상대에 올라 후배, 제자들의 쾌거를 기뻐하는 장면은 뭉클했다. 한국 여자축구의 과거, 현재, 미래가 우승 역사로 하나 된, 가슴 뜨거운 순간이었다.
수원=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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