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 SK와 수원 삼성의 '하나은행 K리그 2025' 승강 플레이오프(PO) 2차전 전후로 축구계 정설처럼 여겨지는 이 말을 실감했다. 제주시에 위치한 제주국제공항부터 서귀포 시내까지 수원의 푸른 유니폼, 푸른 머플러, 푸른 우산을 든 팬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가족 단위 팬들이 눈에 띄었다. 경기 당일 경기장 주변 식당은 수원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프랜차이즈 카페에선 커피 주문까지 4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경기 전날인 6일 늦은 밤까지 경기장 부근 길거리에서 수원 응원가가 울려퍼졌다. "서귀포를 수원이 점령했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이날 경기에선 4천300석에 달하는 제주월드컵경기장 원정석이 꽉 찼다. 제주 구단 관계자들은 "처음 보는 광경"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원정석에 자리를 잡지 못한 수원팬은 '올팬존'(양팀 팬이 모두 앉을 수 있는 좌석, 894석 규모)을 처음으로 매진시켰다. 일부 수원팬은 제주 홈 서포터석에도 앉은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론 넉넉잡아 7천명 가까이 되는 수원팬이 경기장을 찾은 것으로 추산된다. 경기 막바지 전광판에는 관중 1만8912명이 경기장을 찾았다고 소개됐다. 2018년 유료 관중 집계 이후 제주월드컵경기장 최다 관중이었다. 종전 최다 관중 기록인 1만1049명(2월 FC서울전)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제주의 잔류를 응원하는 제주 홈팬도 1만명 이상이 찾아 열띤 응원을 벌였다.
제주도의 하루 평균 입도객이 대략 4만명이란 점을 감안하면, 7천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다. 서귀포에 거주하는 제주 구단 관계자는 "지난 이틀 동안 서귀포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지역 상권이 살아났다'라는 말을 절감했다"라고 말했다. 한 상인은 제주와 수원의 승강 운명을 건 승부에 대한 정보를 미리 파악해 "우리 물건을 사면 수원이 승격한다"라고 말하며 수원팬을 꼬셨다(?)는 후문이다.
사진(제주)=윤진만 기자yoonjinman@sportschosun.com
제주는 2023년 수원이 K리그2로 강등된 이후 약 2년만에 수원과 홈 경기를 치렀다. 전반 김승섭과 이탈로의 연속골로 2대0 승리하며 합산 스코어 3대0으로 잔류에 성공했지만, 경기 후 현장에선 온통 수원팬에 관한 이야기만 나왔다. 제주측에 따르면, 이날 제주의 모기업인 SK에너지의 김종화 대표이사와 고승철 제주관광공사 사장 등이 경기장을 찾았다. 제주 구단은 1만8912라는 숫자를 앞세워 모기업과 제주시, 서귀포시, 제주관광공사 등에 '스포츠(축구) 관광의 가능성'을 어필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 구단은 최근 꾸준히 클럽하우스 및 스타디움 투어, 수학여행 및 원정팬 대상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이날 입장수익은 평소의 두 배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수원전은 제주 구단 역사에 남을 '최고의 사례'다.
제주 관계자들은 "수원팬들은 경기 중에도 최고의 매너를 보여줬다"라고 입을 모았다. 역대 가장 많은 관중이 찾은 경기에서 사소한 다툼 하나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 구단도 평소보다 일찍 경기장 문을 활짝 열었다. 경기장에선 뜨거운 승부가 펼쳐졌지만, 경기장 밖에선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수원팬은 전반 연속 실점과 전반 39분 이기제의 퇴장으로 사실상 승격이 어려워진 후반전에도 쉬지 않고 열띤 응원을 보냈다. 현장에선 수원팬의 응원은 "어나더 클래스"란 말이 나왔다. 팬들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에야 "변성환 나가"라고 '아웃콜'을 외쳤다. 변 감독은 팬이 건넨 확성기를 들고 "승격 실패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라고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 제주 관계자는 "수원이 왜 전통의 명가인지를 다시금 실감했다. 내년에 꼭 승격해 이곳에서 다시 경기를 치르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제주=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