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널은 26일 맨유전에서 상대 골키퍼가 달려나오지 못하도록 골문 앞에 진을 쳤다. 중계화면
기차 놀이? 중계화면
◇아스널은 코너킥 상황에서 세 명의 선수를 파포스트 지역에 배치한다. 수비진에 혼란을 주기 위해서다. 중계화면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26일(한국시각) 영국 런던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스널과 맨유의 2025~2026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3라운드. 아스널의 코너킥 상황에서 맨유 골 에어리어에는 골키퍼를 제외하고 필드 플레이어 16명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16명!
부카요 사카가 코너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스널의 벤 화이트, 빅토르 요케레스, 데클란 라이스가 파포스트 쪽으로 이동해 줄지어 섰다. 맨유 골키퍼 세니 라멘스가 위치한 골라인 앞에는 장신 센터백 윌리엄 살리바와 '미끼' 율리엔 팀버가 맨유 선수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살리바의 임무는 골키퍼가 자유롭게 달려나오지 못하게 하고 시야를 방해하는 '스크린'이다. 공이 올라온 타이밍에 맞춰 후방에 대기하던 '거구' 가브리엘 마갈량이스가 니어 포스트 쪽으로 거침없이 달려가고, 요케레스는 파 포스트에서 니어 포스트쪽으로 이동해 니어 포스트 앞에 순간적으로 '트윈 타워'를 구축했다. 미켈 메리노는 골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골키퍼를 방해하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사카의 인스윙 코너킥은 니어 포스트 부근에 떨어졌다. 공이 마갈량이스의 이마에 맞진 않았지만, 달려나온 라멘스와 맨유 수비진의 방해도 받지 않고 문전 쪽으로 향했다. 맨유 마테우스 쿠냐가 얼떨결에 몸으로 공을 막았다. 하지만 공이 떨어진 곳 앞에 메리노가 있었고, 메리노는 혼전 상황에서 침착한 오른발 슛으로 골을 만들었다.
아스널이 1-2로 뒤진 후반 38분에 벌어진 상황이다. 아스널은 전반 29분 리산드로 마르티네스의 자책골로 리드했다. 하지만 전반 37분과 후반 5분 각각 브라이언 음뵈모와 파트리크 도르구에게 연속골을 헌납하며 끌려갔다. 올 시즌 팀 득점의 30% 이상을 책임진 세트피스 기회를 살려야 했다. 아스널의 시즌 20번째 코너킥 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 파포스트 부근에 세 명을 배치하고, 살리바가 골키퍼를 견제하고, 마갈량이스가 밀고 들어가는 전략은 올 시즌 내내 아스널이 보여준 것이다. 아스널은 골문 앞에 일부러 혼란을 조장해 상대 실수를 유발한다. 지난 8월 올드 트라포드에서 열린 맨유와의 시즌 첫 맞대결에서도 코너킥 상황에서 리카르도 칼라피오리의 결승골은 살리바의 스크린 플레이에 의한 상대 골키퍼의 펀칭 미스에서 비롯됐다. 메리노의 골은 아스널이 세트피스 이후 혼전 상황에서 기록한 시즌 8호골이다. 소위 '우당탕탕 골'도 철저히 준비한다는 의미다. 인터밀란과의 유럽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선 레안드로 트로사르의 헤더가 골대에 맞고 나온 공을 가브리엘 제주스가 골을 넣은 바 있다.
AP연합뉴스
아스널은 이번 맨유전에선 니어 포스트, 인터밀란전에선 파 포스트를 공략했다. 아스널의 코너킥은 중앙(37%), 니어 포스트(23%), 파 포스트(15%)로 비교적 고르게 분포됐다. 득점 위치 또한 중앙 11골, 니어 포스트 8골, 파 포스트 6골이다. 상대팀 입장에선 한 쪽만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맨유 공격수 아마드 디알로는 마테우스 쿠냐의 결승골로 팀이 3대2로 승리를 거둔 뒤 SNS 게시글 댓글을 통해 "아스널의 유일한 희망은 코너킥. 겸손해라 꼬마야"라고 조롱했지만, 아스널이 '유럽 세트피스 킹'이 된 건 코치진의 오랜 연구와 고민의 결과다. 미켈 아르테타 감독 체제에 접어들어 지난 2~3년간 세트피스 전략을 업그레이드했다. 펩 과르디올라 맨시티 감독의 제자인 아르테타 감독은 아웃스윙과 짧은 연결을 선호하는 과르디올라 감독과는 다른 방식의 세트피스 전략으로 맨시티의 라이벌로 우뚝 섰다. 상대 골키퍼를 '감금'하는 전략이 일부 축구팬 사이에선 '중국 축구대표팀의 벌떼 전략을 닮았다'라고 비판을 받지만, 축구 규정이 바뀌기 전까진 아스널의 골문 앞 '벌떼 전략'은 파울이 아니다.
보통 수비수들을 세트피스 공격에 투입하는 팀은 역습에 취약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스널은 역습에 의한 실점을 거의 허용하지 않았다. 맨유에 3골을 헌납하기 전까지 리그 실점은 단 14골이었고, 맨시티전 공격수 엘링 홀란을 제외하곤 아스널을 상대로 완전한 역습으로 골을 넣은 팀은 없었다. 무엇보다 아스널은 세트피스가 끊기더라도 공격수부터 수비수까지 일제히 빠른 속도로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 실점 위기를 모면해왔다. 아스널을 디알로의 말처럼 '세트피스 원툴'로만 분류할 수 없는 이유다. 체력, 조직력, 투쟁심이 뒷받침된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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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은 후반 42분 쿠냐에게 결승골을 헌납하며 2대3으로 패했다. 맨유전 패배는 큰 충격이다. 아스널은 2023년 2월 이후 3년만에 단일경기에서 3실점을 기록했다. 맨유를 상대로 홈에서 패한 건 2017년 12월 이후 8년만이다. 올 시즌 들어 홈에서 처음으로 패했다. 최근 리그 3경기 연속 무승(2무 1패)에 빠진 선두 아스널은 승점 50(15승5무3패)에 머무르며 2위 맨시티, 3위 애스턴 빌라(이상 승점 46)에 승점 4점차로 추격을 허용했다. 통계업체 '옵타'는 아스널의 리그 우승 확률이 맨유전 패배로 93%에서 84%로 약 9% 떨어졌다고 예측했다. 아스널이 2004년 이후 22년만에 리그를 제패하기 위해선 앞으로도 세트피스 덕을 봐야 한다. 공든 탑을 일부러 무너뜨릴 이유도 없다.
한편, 감독을 바꾼 맨유는 아스널의 세트피스를 극복했다. '캐릭 매직'에 힘입어 맨시티(2대0 승), 아스널전 2연승을 질주하며 승점 38(10승8무5패)로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인 4위를 탈환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