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경우의 수'로 32강에 진출하는 게 지금 상황에서 과연 의미가 있을까.
'충격'이라는 단어 밖에 떠오르지 않는 남아공전이다. 90분 내내 이렇다 할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정도로 처참한 경기력이었다. 오죽했으면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나온 첫 질문이 '식중독 증세'를 묻는 것이었다. 그만큼 모두가 예상치 못한 대반전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남아공전에서 손흥민(LA FC)을 벤치에 두고 오현규(베식타시)를 최전방에 놓은 채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에게 뒤를 받치도록 했다. 앞선 두 경기에서 손흥민을 최전방에 놓고 후반 교체하는 방식을 택했지만, 피지컬 면에서 앞선 오현규를 선발로 쓰고 활동량이나 스피드가 좀 더 나은 손흥민을 후반 조커로 활용하고자 했다. 수비-역습 위주로 나설 남아공을 상대로 공격적인 포석을 가져가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됐다.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플랜이었다.
그러나 이런 플랜은 전혀 실행되지 못했다. 경기 초반 15분 가량 공격을 전개한 뒤 남아공이 두텁게 수비벽을 쌓자 길을 찾지 못했다. 의미 없는 후방 빌드업을 계속했지만 공간을 찾지 못했고, 패스 정확도도 떨어졌다. 전방으로 가는 긴 패스 뿐만 아니라 후방에서 연결하는 짧은 패스 조차 연결하지 못하며 위험천만한 장면이 이어졌다.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이후에도 경기 속도나 패스 연결 면에서 크게 나아진 게 없었다. 문전 앞에서 두 번이나 골과 다름 없는 장면을 막아낸 김승규(FC도쿄)의 슈퍼 세이브가 아니었다면 실점은 더 일찍 나올 수 있었다.
홍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손흥민과 옌스 카스트로프(묀헨글라트바흐), 김진규(전북 현대)를 한 번에 교체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그러나 남아공 진영에서 볼을 잡아도 주변 선수들의 움직임이 수반되지 못했고, 이는 또 백패스와 후방 빌드업의 도돌이표로 돌아왔다. 남아공에게 선취골을 내주고,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를 또 거쳤지만 플랜 변화는 없었고, 결국 승부는 패배로 마무리 됐다. 냉정하게 이날 경기를 보면 승리에 대한 의지를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남아공전 패배로 한국 축구는 또 지긋지긋한 월드컵 경우의 수를 계산하게 됐다. 1승2패, 승점 3이지만 골득실은 -1(2득점 3실점)이다. 현재 3경기를 마친 3팀 중 한국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1승1무1패 승점 4)에 뒤져 있고, 스코틀랜드(1승2패 승점 3, 골득실 -3)에 앞서 있다. 그러나 아직 3차전을 치르지 않은 팀 가운데 승점 3인 팀이 4팀이나 되고, 나머지 5팀이 모두 패한다는 보장도 없다. 한국은 골득실이 마이너스인데다 3경기에서 단 2골에 그쳐 다득점 싸움에서도 불리하다. '경우의 수'라는 산술적인 가능성은 살아 있지만, 냉정하게 보면 12팀 중 상위 8팀으로 32강 와일드카드로 가는 게 결코 쉬운 상황은 아니다.
기적적으로 32강에 간다고 해도 가시밭길이다. 대진상 E조에서 2연승으로 1위를 확정한 독일이나. 이집트, 이란, 벨기에, 뉴질랜드가 포함된 G조 1위와 맞붙는다. G조는 이집트가 1승1무로 1위지만, 이란과 벨기에가 2무, 승점 2로 최종전 결과에 따라 1위 팀이 갈리는 상황이다. 그러나 경우의 수가 기적적으로 맞아 떨어져 32강에 나선다고 해서 남아공전과 같은 경기력이 이어진다면 망신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