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달라하라(멕시코)=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10년 전엔 실패를 했다." 홍명보 '2기'의 출발은 사과에서 시작했다. 2024년 7월, 대한축구협회는 '탁구 게이트'로 얼룩진 한국 축구를 바로 세울 인물로 홍명보 감독을 낙점했다.
홍 감독은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축구의 '레전드'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선 주장 완장을 달고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끌었다. 2012년 런던에선 감독으로 한국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었다. 홍 감독은 한국 축구사 곳곳에 위대한 자취를 남겼다.
딱 한번, 아쉬움이 있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이었다. 그는 A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월드컵에 출격했다. 결과는 1무2패.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팬들의 아쉬움은 컸고, 결국 그는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그는 '제로'에서 다시 시작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대한축구협회에서 전무이사를 맡아 한국 축구를 구석구석 살폈다. 2021년부터는 울산 현대(현 울산 HD)를 이끌고 2022, 2023시즌 연달아 K리그1 우승을 선물했다. 그는 최고의 순간 다시 한번 A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출발부터 암초를 만났다. 일각에선 감독 선임 관련해 불공정 논란을 주장했다. 비난을 위한 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홍 감독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내가 아는 선수만 뽑아서 쓰는 '인맥축구' 얘기도 들었었다. 그건 다 인정한다. 내가 그 당시에는 K리그에서 단편적인 선수들만 뽑았다. 정말 팀에서 역할을 해야 하고, 이름값은 없지만 팀에 정말 도움이 되고, 헌신하는 선수를 몰랐다. 그래도 지금은 K리그에서 3년 반 생활을 했다. 팀에 정말 헌신할 수 있는 선수, 지금 들어가면 경기를 바꿀 수 있는 선수 등의 이름이 있다. 10년 전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홍 감독은 손흥민(LA FC)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파리생제르맹) 등 해외파는 물론이고 K리그 선수들도 꾸준히 점검하며 스쿼드를 구상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신데렐라'로 깜짝 등장한 이기혁(강원)이 대표적인 예다.
아픈 과거를 청산한 홍 감독은 북중미월드컵을 향해 묵묵히 걸었다. 주변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월드컵만 바라봤다. 덕분에 한국은 아시아 3차 예선을 무패(6승4무)로 통과하며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후 그는 미국 및 유럽 원정 경기를 통해 선수단을 점검했다. 월드컵에서 사용할 다양한 옵션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동안 활용했던 포백 대신 스리백을 실험하는 등 월드컵 대비에 집중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조 편성도 무난하단 평가였다. '고지대 변수'가 있었지만, 한국은 사전캠프를 통해 완벽 적응에 나섰다. 한국은 체코와의 첫 경기에서 2대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환호했다. 홍 감독은 월드컵 사령탑으로 4경기 만에 첫 승리를 거머쥐며 활짝 웃었다. 또 한국 축구 역사상 6번째로 월드컵 승리를 지휘한 사령탑이 됐다. 한국인 지도자로는 허정무 신태용 감독에 이어 세 번째였다. 새 역사도 기대하게 했다. 그는 1승만 더하면 2002년 한-일월드컵 거스 히딩크 감독(네덜란드)에 이어 두 번째이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월드컵 2승을 거둔 한국 대표팀 사령탑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한국은 2차전에서 개최국 멕시코에 0대1로 패했다. 더 큰 충격은 남아공과의 마지막 경기였다. 남아공은 전력상 '한 수 아래'로 평가됐다. 하지만 한국은 남아공을 상대로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한 채 0대1로 졌다. 한국은 이날 비기기만 해도 A조 2위를 확정,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아공에 패하며 3위 와일드카드를 기대해야 했다.
팬들은 거세게 비난했다. 그러나 홍 감독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기다렸다. 초조한 시간이 흘러갔다. 하늘은 무심했다. 한국은 모든 '경우의 수'에서 빗나갔다. 잔인할 정도로 한국의 기대를 가로막았다. 결국 한국은 3위팀 가운데 10위를 기록하며 월드컵 도전을 마감했다.
북중미월드컵의 실패는 곧 홍명보 체제의 종말과도 연결된다. 홍 감독은 당초 2027년 1∼2월 열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아시안컵까지 2년 6개월 시간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그 기간을 다 채우는 것은 '사치'다. 불명예 퇴진은 불가피하다. 홍 감독은 남아공과의 결전을 앞두고 "월드컵에서 우리가 3차전을 앞두고 이런 경우의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은 꼭 이겨야만 했던 것 같다"며 "나는 지금 내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지면 된다"고 말했다.
남아공전 패배 뒤에도 "이런 큰 무대에서의 결과는 모든 것이 감독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었다. 잘못 판단하고 결정했기에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책임을 강조해 왔다.
홍 감독은 12년 전 브라질월드컵에서 알제리에 발목이 잡혔다. 이번에는 또 아프리카 팀인 남아공이다. 팬심을 잃은 '홍명보 시대'의 동력은 사라졌다.
과달라하라(멕시코)=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