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불과 2년 전까지 외면받던 지도자 제시 마치 캐나다 축구대표팀 감독이 캐나다 축구의 역사에 길이남을 대업적을 세웠다.
캐나다는 29일(한국시각) 미국 LA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아공과의 2026년 북중미월드컵 32강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47분 스테픈 유스타키오(LA FC)의 결승골로 1대0 승리했다. 미국, 멕시코와 함께 이번 대회를 공동 개최한 캐나다는 사상 첫 월드컵 조별리그 통과에 이어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깜짝 업적'을 넘어 '위대한 업적'으로 나아가는 단계다. 캐나다의 FIFA 랭킹은 30위로, 대한민국(25위)보다 낮다. 캐나다는 FIFA 랭킹 7위 모로코, 8위 네덜란드의 32강전 승자와 16강에서 격돌한다.
이번 대회를 통해 일약 '국민 영웅'으로 우뚝 선 마치 감독은 경기 후 캐나다 대표팀 선수, 스태프들을 모아놓고 "여러분, 우리가 함께한 2년을 떠올려봅시다. 우리가 계획대로 경기를 하고, 원하는 모습대로 뛰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고, 최고의 기량을 펼치자고 했던 그 이야기를 떠올려보자고요. 여러분은 캐릭터를 보여줬습니다. 여러분은 캐나다의 영웅입니다. 캐나다 어린이들의 영웅입니다. 여러분 덕분에 이 나라의 스포츠 미래는 밝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이 경기를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여러분은 캐나다의 영웅입니다"라고 말했다.
마치 감독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24년 5월 캐나다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2022~2023시즌 리즈 유나이티드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잔류로 이끈 그는 다음시즌 7경기 연속 무승 끝에 경질됐다. 최고 수준의 감독직을 오랜기간 꿈꾼 마치 감독에겐 엄청난 좌절이었다.
미국 출신인 마치 감독은 2024년, 미국 대표팀 사령탑 제의를 받았다. 고국 대표팀을 맡는 것은 모든 지도자에게 꿈만 같은 일. 마치 감독은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미국축구협회 수뇌부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전 토트넘 감독을 선택했다. 대한축구협회도 1순위 후보였던 마치 감독을 외면했다.
그렇게 캐나다 사령탑을 맡게 된 마치 감독은 지난 2년간 '축구 변방' 캐나다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마치 감독과 가까운 축구기자 스콧 프렌치는 'BBC'를 통해 "미국 사령탑을 맡지 못하게 된 일이 그에겐 큰 상처로 남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게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는 마음속에 응어리를 품고 있다"라고 말했다.
'BBC'에 따르면, 마치 감독은 부임 후 10일 동안 9개 도시를 돌며 팬들을 만나고 캐나다 문화를 경험했다. 대표 선수들과 개인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만나거나 선수들을 이탈리아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함께 휴가를 즐기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에 코치진, 선수, 팬들 사이에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됐다.
2024년말, 미드필더 리암 밀러(헐시티)는 전방십자인대 부상을 당했다. 일각에선 밀러가 부상 전 기량을 되찾기 어렵다고 예상했다. 마치 감독은 다른 부상 선수들에게 그러하듯 많은 시간을 할애해 밀러와 만나 상태를 살폈다. 밀러가 이탈리아에서 재활 치료를 받을 당시, 자기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밀러는 완벽한 몸상태로 회복해 지난시즌 헐시티의 EPL 승격에 기여했고, 현재 캐나다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뛰고 있다.
마치 감독은 "대표팀의 모든 선수와 알게 되었지만, 특히 밀러와는 정말 가까워졌다.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며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관계와 지금의 팀 구성은 우리가 모두 캐나다를 대표하는데 대한 자부심과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모든 선수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라고 말했다.
마치 감독은 "선수들은 나를 신뢰하거나, 어쩔 수 없이 나와 함께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라고 조크했다. 프렌치 기자는 마치 감독이 조별리그 2차전에서 카타르를 6대0으로 대파한 뒤 관중석을 향해 여섯 손가락을 치켜든 행위에 대해 "그게 바로 마치다. 그는 감정적인 사람이다. 그런 감정이 선수들에게까지 전해져 선수들도 감정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는 선수시절에도 누군가 반칙을 하면 바로 달려들어 경고를 받곤 했다. 그런 면은 데이비드 베컴보다 더 심했다"라고 말했다.
모로코, 네덜란드는 캐나다가 상대한 보스니아, 카타르, 스위스, 남아공보단 몇 수 위의 전력을 지녔다.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스위스에 일격을 당하며 조 1위를 놓쳤던 마치 감독은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선 지금보다 나은 경기력을 선보여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마치 감독은 "(우리 상대가)네덜란드일 수 있고, 모로코일 수도 있다. 누가 됐든, 내가 원했던 바다. 우리 선수들이 강팀을 상대로 승리할 자격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제 우리는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최고의 스타이자 김민재 소속팀 동료인 알폰소 데이비스(바이에른 뮌헨)는 부상을 털고 이날 후반 교체로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