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신데렐라' 이기혁(강원)은 2026년을 "모든 운이 다 따라와주는 한해"라고 정의했다.
그의 말대로다. 2026년 이기혁의 운명이 바뀌었다. K리그에서 볼 좀 차는 선수였던 이기혁은 단숨에 한국축구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A매치 출전이 1경기에 불과했던 이기혁은 2026년 북중미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깜짝 발탁됐다. 한발 더 나아가,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했다. 아쉽게도 32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이기혁은 견고한 수비와 정교한 빌드업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기혁의 '운수 좋은 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9월 열릴 2026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로 발탁됐다. 이기혁은 "올 시즌을 하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만 벌어지고 있다. 시즌 전에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올해 목표로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이야기하기는 했는데, 그 목표들을 모두 이뤄낼 거라 예상한 적도 없다. 기회가 찾아와서 너무 큰 영광"이라고 어리둥절해 했다.
힌트는 좀 있었다. 이기혁은 "몇년 전에 사주를 봤다. 2026년부터 해외에 많이 나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 믿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때 그게 맞았구나 싶다"고 웃었다. 물론 가장 큰 원동력은 노력이다. 이기혁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축구에 전념하고, 훈련에만 집중했다. 사람들이 신데렐라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간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거 같아서 너무 기쁘다"고 했다.
월드컵은 그의 축구인생을 바꿨다, 이기혁은 "명단 발표 후에도 믿기지가 않았다. 함께 훈련을 하면서도 계속 꿈인 것 같았다"며 "확실히 월드컵을 치른 후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실제 월드컵을 마치고 돌아온 후 치른 첫번째 경기였던 12일 FC서울과의 17라운드(0대0)에서 이기혁은 원숙한 플레이로 강원의 무실점을 이끌었다. 정경호 강원 감독은 "기혁이가 내가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고 하더라"고 웃은 뒤 "제자가 월드컵 무대를 뛰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바라보는 시선이 늘어난만큼, 책임감도 늘었다. 이기혁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대표팀 선수들의 '간절함'에 대해 언급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기혁은 "누군가를 비교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모두 좋은 선수들이기에 '더 간절하게 함께 뛰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내 취지는 그게 아니었다. 모두가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고, 다 열심히 했다고 이야기 했는데 좋지 않은 방향으로 해석돼 월드컵에 참가한 선수로 조금 속상하고 서운했다"고 했다. 정 감독은 "기혁이한테 인터뷰 후 이것도 경험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했다.
물론 간절함은 여전하다. 이기혁은 "항상 열심히 하는 선수로 남고 싶다. 나를 향한 기대치가 높아진만큼, 더 좋아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안일해졌다', '간절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스스로 더 신경쓰고 열심히 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 감독도 "만족하는 순간 성장은 없다. 들뜨지 않고, 초심을 유지하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형들에 묻어갈 수 있었던 월드컵과 달리 아시안게임은 이기혁이 중심이 돼야 한다. 이기혁은 "감독님은 일단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를 뽑으신 것 같다. 센터백이 됐던, 풀백이 됐던 어떤 포지션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며 "내가 아시안게임에서는 가장 연장자다. 책임감을 갖고 선수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뛸 수 있게 만드는게 내 역할"이라고 했다. 월드컵을 보며 배운 것을 모두 쏟아낼 생각이다. 그는 "김민재 형과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민재형이 왜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큰 팀에서 뛰는지 알게 됐다. 이를 토대로 선수들과 공유하고 호흡하겠다"고 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이기혁의 2026년, 최고의 결말은 역시 금메달이다. 이기혁은 "아시안게임이라는 무대를 통해 참가 선수들의 인생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은 금메달을 딴다는 가정 아래 생기는 변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선수들이 잘 뭉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