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자 명예 디자이너, 자연의 촉각이 느껴지는 '아트 투 웨어'의 세계로

기사입력 2016-10-26 15:58


동대문=엔터스타일팀 이정열 기자 dlwjdduf777@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최정윤 기자] 옷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한혜자 명예 디자이너를 만났다.

뜨거웠던 2017 S/S 헤라 서울패션위크가 막을 내렸다.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에서 18일부터 22일, 5일간 진행된 서울패션위크는 수많은 패션 피플들의 젊은 에너지와 낭만으로 가득 차 아름다운 가을을 장식했다. 같은 시간 DDP 또 다른 공간에서는 의미 깊은 전시가 함께 개최되고 있었는데, 바로 DDP 배움터 디자인 둘레길 지하 2층에서 열린 패션 디자이너 한혜자의 명예 디자이너 초청 아카이브 전시다.

지난 17일 서울패션위크 전야제로 열린 전시회 오프닝 리셉션을 시작으로 다음 달 9일까지 계속될 아카이브 전시는 'Tactus : 촉각'이라는 주제로 DDP를 찾는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된다. 40년간 차곡차곡 작품을 쌓아오던 한혜자 명예 디자이너처럼, 패션위크 기간에도 담담히 패션의 역사를 빛내고 있던 그곳은 우아하면서도 자연 속에 들어온 듯 편안했다.

1972년 브랜드 이따리아나(ITALIANA)를 론칭한 한혜자 디자이너는 해외 시장 시험기라 불리는 90년대에 뉴욕 컬렉션에 참가하며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의 해외 진출 기반을 다졌다. 인터뷰 도중 곤란한 처지를 당한 외국인에게 능숙한 영어로 상황을 정리해주던 한혜자 디자이너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는데, 글로벌 시장에 대한 사전 자료가 없던 그 시절 발품을 팔아 자비로 해외 활동을 운영해야 했던 그는 이런 간단한 회화를 기본으로 모든 것을 정말 열심히 했다고 회상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었나요?

4년 정도 쉬고 있었어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번 전시를 제안받게 되었죠. 상업성이 없는 파인 아트(fine arts)로 자유롭고 편안하게,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란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지요. 서울 디자인재단에서 좋은 기회를 줘서 흥분되고 참 기쁜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쇼에서나 전시에서 보여준 작품들이 재조명돼서 감사하고 개인적으로도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 행복해요.

-지난 오프닝 행사에 1회 명예 디자이너인 진태옥 선생님이 참석해 좋은 말씀을 전해주셨는데요. 두 분의 돈독한 애정이 아름다웠습니다.

진태옥 선생님은 존경하고 동시에 사랑하는 선배님이셔요. 처음 진태옥 선생님께서 아카이브 전시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전 더 쉬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라고 했었죠. 그러니 선생님께서 단호하게 "안된다. 한혜자가 해야 한다"라고 하시더라고요. 파리 전시 때문에 바쁘신 와중에도 꼭 해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하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왜 안 한다고 했을까 싶어요.(웃음) 진태옥 선생님의 격려를 듣고, 전시가 진행되는 이곳 DDP 배움터 디자인 둘레길을 둘러보니 너무 멋있어서 반하고 말았죠.


지난 17일 열린 2017 S/S 헤라서울패션위크 전야제 전시회 오프닝 리셉션의 (왼쪽부터) 진태옥 디자이너, 정구호 서울패션위크 총감독, 한혜자 명예 디자이너의 모습이다. 사진제공=서울패션위크


-이번 아카이브 전시 주제인 'Tactus : 촉각'에 대해 살짝 귀띔해주세요.

그동안 평면적인 텍스처를 만졌을 때 특별한 감각이 느껴질 수 있도록 소재에 많은 힘을 기울인 작업을 주로 해왔어요. 우둘투둘하고 거칠거칠하거나 또는 하늘하늘하고 구깃구깃한 등 손끝에 만져지고 눈으로 느껴지는 것들 말이에요.



-'Tactus : 촉각'에 전시된 의상으로 꾸민 쇼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을까요?

와인잔이 달려 있는 칵테일 드레스가 무대에 등장했을 때는 참 황홀했지요. 소리도 빛도 없는 캄캄한 런웨이에 모델 세명이 이 와인 잔 드레스를 입고 걸어 나오는데, 온 사방에 찰랑찰랑하는 소리만 울려 퍼졌어요. 거기에 매여있는 낚싯줄과 글라스에서도 빛이 반짝반짝하는데 정말 예뻤죠.

-보고 들을 수 있는 아트 투 웨어인 셈이네요.

쇼를 준비할 때마다 주제에 맞는 극적인 요소를 더하는 것을 추구해요. 향내 나는 옷을 보이기 위해 백스테이지에서 모델에게 자연의 향을 마구 뿌려 무대로 내보낸 적도 있어요. 오프닝 리셉션 때도 아코디언과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와서 흥을 돋우었는데요. 그 자리에 있었던 가수 이은미 씨가 무대에 뛰어올라 춤추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한 번은 쇼가 시작하기 전 관객들에게 와인 초콜릿 주스 등을 주고 다 함께 와인 한 잔 들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꾸민 적도 있어요. 개도 등장하고 아주 자유롭게 또 드라마틱하게 전개됐죠. 마지막에는 배우 강부자 씨, 박정자 씨 그리고 가수 이은미 씨가 제가 만든 옷을 입고 무대로 등장해요. 크리스털이 잔뜩 박힌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죠.



-이야기가 들어있는 드라마틱한 컬렉션이 정말 멋있어요. 돌 이끼 흙 나무 바람 등의 자연에 영감을 받아 시간의 흐름으로 인한 퇴색과 퇴적이라는 테마를 텍스처로 표현했다는 전시 기획도 인상적입니다.


땅에서 모든 것이 만들어지지요. 본질적인 것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특히 이끼에 이슬이 맺혀 반짝거리는 광경을 지켜보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이를 위빙 텍스타일로 표현한 작품이 있어요. 이번 전시를 맞아 빛이 나오는 구에 설치를 해보았는데, 마치 지구 가운데 핵의 열기가 땅에 비추어지는 것처럼 조화로운 자연의 색이 연출되어 기뻐하고 있습니다. 기대치 않았던 의외성에서 새로운 작품이 또 하나 탄생되었다고 할까요.



-한혜자 선생님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트렌드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패스트 패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

패스트패션은 시대가 요구하는 현상이죠. 지금은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는 때입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잠깐 입고 버려지는 거예요. 참 안타깝죠. 가볍게 입을 수 있는 티셔츠 하나라도 디자이너는 본인의 감성이나 성품을 하나하나 드러내야 할 의무가 있어요. 반면 아트적인 것도 좋지만 입었을 때 그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 옷이기도 하죠. 창의력을 요하지만 자유롭고 편해야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한혜자 선생님이 생각하는 트렌드 선도자는 누구인가요.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 신선하고 좋은 충격이었어요.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에도 불구하고 노벨문학상을 받는, 장르의 경계 무너진 그런 시대가 온 것이 충격적이고 반가워요. 이제 밥 딜런 시대의 옷이 나오지 않을까요?(웃음)


-전시장에 방문할 시민들에게 작품 감상시 작은 팁을 전해준다면요?

아름다운 둘레길 오셔서 먼저 전체적인 무드를 보고. 작품 하나하나 한혜자가 어떻게 이걸 왜 했을까 한번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바닥에 설명도 함께 적혀 있으니까요. 어떤 의도일까 이야기일까 상상해보면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dondante14@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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